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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단의 권세

본문 / 9: 1-11

 

1. 인간의 생각

신자가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시각에서 현실을 조명해 보면 과연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도 확신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들의 눈에 보여지는 세상의 현실이 도저히 사랑의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곤란할 정도의 상황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신다고 할 때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거는 기대는 세상을 정화 시켜주고 살기 좋은 환경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것이 사실이라면, 신은 악을 미워하니까 악한 자는 자연히 징벌을 받고 선한 자는 신의 보호를 받음으로서 자연히 선한 자가 증가되어 가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누구나 살기 좋은 아름다운 세상을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런 인간의 소망을 도와주는 것이 사랑의 하나님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을 가진 신자가 이 세상을 바라본다면 과연 하나님이 다스리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갈수록 죄가 증가 되어 가는 것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고, 악한 자를 징벌하신다는 느낌은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자기 스스로 독립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다스리심을 믿으십니까? 믿으신다면 하나님이 그렇게 함께 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의 곤란한 일과 어려움이 발생하고 남들 보기에 신자로서의 면목이 서지 않을 정도의 고통스러운 일들이 있을 때 과연 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됩니까?

갈수록 악해져 가는 것 같은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믿지 않은 자는 그러한 현실을 들이대면서 '하나님은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자로서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면 사단은 하나님의 권세 아래서 꼼짝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사단이 꼼짝을 못하니까 당연히 죄가 힘을 못 쓸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사단이 세상에서 꼼짝을 못하고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인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2. 황충과 전갈의 권세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9:1)고 말씀합니다. 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신자들이 요한계시록에 대해서 오해하는 것은 요한계시록의 내용이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일어날 사건에 대해서 계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역시 예수님의 재림 때 있을 실제 사건으로 생각해 버립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나중의 일이 아니라 지금 세상의 현실에 대해서 말하고 있음을 알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사도 요한에게 환상을 통해서 세상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요한계시록인 것입니다.

읽은 본문에 보면 천사가 나팔을 불 때 하늘에서 별 하나가 땅에 떨어집니다.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은 하나님을 거슬려 땅에 떨어진 사단을 뜻합니다. 이 사단이 땅에 떨어질 때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무저갱의 열쇠란 무저갱에 대한 권세를 의미합니다. 즉 사단이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졌는데,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니라 무저갱에 대한 권세를 받아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저갱의 권세를 가지고 무저갱을 엽니다.

그러자 오늘 본문 2절부터 보면 “2. 그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며 3.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9:2-3)고 합니다. 무저갱에서 황충이 나옵니다. 이것이 땅의 현실입니다.

세상은 사단이 무저갱을 열어서 나오게 된 황충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가지고 세상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세상이 이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와 같은 모습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황충이 나올 때 연기가 같이 올라오는데 그 연기가 해와 공기를 어둡게 했다고 말합니다. 즉 세상은 사단의 권세 아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어둠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이 무저갱의 열쇠를 누구로부터 받았겠습니까? 사단에게 열쇠를 줄 수 있는 권세자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결국 사단에게 권세를 허락하시고 땅을 어둡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도록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허락하신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의아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사단에게 이러한 권세를 주셔서 세상을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단에게 있는 권세도 빼앗아 버리고 세상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사단 사이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고 있는 욥기서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욥기 1장에 보면 하나님과 사단의 대화가 나옵니다.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는데 사단도 그 앞에 와서 섭니다. 여호와가 사단에게 '네가 어디서 왔느냐?'고 묻습니다. 사단은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다'고 말합니다. 사단이 땅을 여기저기 두루 다닌 것이 여행을 하기 위해서였겠습니까? 아닙니다. 사단이 땅을 두루 다닌 것은 권세를 가지고 땅을 다스린 것을 말합니다.

땅을 두루 다니고 온 사단에게 하나님은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해 보았느냐? 욥같이 순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합니다. 그러자 사단이 대답하기를 '욥이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주께서 욥에게 복을 주시니까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사단의 생각입니다.

사단은 인간은 아무런 까닭 없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믿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는 것입니다. 욥도 역시 하나님이 복을 줘서 재산과 자손이 많도록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사단에게 욥의 소유를 치라고 하십니다. 결국 하나님과 사단 사이에 있었던 일로 인해서 욥은 자신의 모든 소유와 자식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욥기서 2장에 보면 사단이 다시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2:3)고 말씀합니다.

사단은 다시 대답하기를 4절부터 보면 “4.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의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5.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2:4-5)라고 합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소유보다는 생명이기 때문에 그 몸을 치면 여호와를 욕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은 사단에게 욥의 몸을 칠 것을 허락을 합니다. 그러나 그 생명은 해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대화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단은 인간은 그 소유와 몸만 치면 꼼짝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은 사단에 대해서 노출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즉 고통과 재앙에 대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반대로 사단에게 허락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인들이 인식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실입니다. 많은 교인들은 하나님이 신자들을 사단의 활동으로부터 또는 재앙과 어려움으로부터 보호해 주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욥기에서 나타난 하나님과 사단의 대화를 보면, 하나님은 당시 믿음이 좋았고 순전했던 욥조차도 사단이 치도록 허용을 했다는 것을 볼 때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할 현실은 인간은 사단에 대해서 노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재앙과 어려움으로부터 보호된 상태가 아닙니다. 이러한 상태 속에서 인간이 의아해하는 것은, 도대체 아무런 까닭도 없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욥이 의아해한 사실이었고 욥의 친구들도 바로 이런 점을 들어서 욥에게 지적을 했던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에게 잘못한 게 있으니까 재앙을 받는 것이 아니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욥은 그에 대해서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고 말합니다.

욥은 평소에 죄에 지지 않기 위해서 죄와 싸우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심지어는 아들들의 생일이면 혹시 지었을지 모르는 죄를 위해서 번제를 드릴 정도로 죄와 싸운 사람입니다. 때문에 욥은 자신의 재앙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재앙에 대해서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 욥에게는 큰 혼란이었습니다. 평소에 알고 있던 하나님이 아니라 참으로 알 수 없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이것이 욥의 때에 하나님과 사단 사이에 있었던 일이라면 이것은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사단은 땅에 있는 전갈과 같은 권세를 가진 황충을 무저갱에서 올라오게 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세상은 황충과 전갈로 인해서 괴롭힘을 당하는 땅입니다. 황충과 전갈의 권세에 대해서 노출되어 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성도라고 해서 이것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아무런 까닭도 없이 고통을 당하는 것 같은 일들이 많을 것입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그럴 때면 사단의 권세 아래 노출되어 있는 세상 현실에 대해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3. 우리가 누리는 은혜

오늘 본문 7절부터 보면 “7.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8.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으며 9. 또 철 호심경 같은 호심경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쟁터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10.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9:7-10)고 합니다.

여기 묘사된 황충의 모습은 한마디로 말해서 강하고 무서운 존재입니다. 특히 10절에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는 말씀은 황충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여실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을 잘 믿는 신자라고 해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면 하나님을 버릴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까닭 없이 믿는 자는 없다는 것이 사단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는 과연 어떤 까닭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소유로 인해서 건강으로 인해서 그 외 어떤 다른 이유로 인해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우리 스스로는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소유를 치고 몸을 치면 모든 인간은 주를 욕할 것이라고 여깁니다. 또 사실 인간은 자신의 소유와 몸에 대해서 까닭 없이 재앙을 당할 때 의아해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고통 속에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고 할지라도 자신에게 닥친 재앙에 대해서는 속 시원한 해답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일을 알 수 있는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욥은 욥기서 2장에 보면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2:10)"고 말합니다. 복을 주셨으니 재앙도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재앙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떻습니까? 사단의 권세 아래서 재앙에 노출되어 있는 현실에 대해서 이해를 할 수 있습니까? 신자가 재앙에 노출되어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단에게 밀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더 하나님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때문에 재앙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이해하려고 해 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재앙을 주시는 하나님'이 돼버리기 때문에 역시 알 수 없는 하나님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때로 재앙 속에서 '그래 그동안 내가 누린 것이 모두 하나님의 복이었다는 깨달으라고 이런 재앙을 내리신 것이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깨달음을 주시기 위해서 재앙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생각을 하고 난 뒤에도 재앙은 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계산상으로는 재앙을 주신 이유에 대해서 깨달았으면 재앙이 그쳐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재앙은 계속됩니다. 깨달음도 재앙을 해결하는 방법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 혼란만 더욱 가중될 뿐입니다.

하나님은 사단에게 욥의 소유와 몸은 허락했으나 그 생명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황충과 전갈에게 사람을 괴롭게는 하나 죽이지는 못하게 합니다. 결국 재앙 속에서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손길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세상이 사단의 권세 아래서 괴롭힘과 고통을 받으며 살게 되지만, 그러나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사단의 권세 아래 있습니다. 전갈과 황충이 권세를 가지고 사람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 고통과 재앙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 아님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신자된 우리에게는 나름대로 황충과 전갈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의 관심은 어린양에게 있어야 합니다.

7절에서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 같다고 표현합니다. 신자는 전쟁 속에 있습니다. 이 전쟁을 우리의 의로 이기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욥처럼 재앙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 것이 전쟁이 아닙니다. 욥은 욥기서 결론 부분에 가면 결국 자신의 생명의 신비에 대해서 무지했던 것에 대해서 회개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지혜이고 고통을 통해서 드러난 인간의 순수함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단의 권세 아래 허락하신 것은 자신의 의를 의지해서 살아가는 세상에 하나님의 지혜자가 누구인가를 드러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이든 재앙이든 자기 의와 연관시키지 않고 나의 생명은 오직 여호와께 있음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 지혜자인 것입니다.

 
 
(말씀 복습하기)
 

1.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에 대해 확신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2.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린다고 할 때 어떤 생각을 가진다 합니까??

 

3. 리가 생각하는 계시록의 내용과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어떻게 다릅니까?

 

  4. 사단이 받은 권세와 그 권세로 한 일이 무엇이며 또 그 권세로 말미암아 세상의 현실이 어떻게 되었다고 말씀합니까?

   

5. 사단이 생각하는 인간이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6. 하나님과 사단의 대화에서 알 수 있는 인간의 상태는 어떠하다고 합니까?

 

7. 욥이 당한 일이 욥에게 큰 혼란으로 다가온 이유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8. 사단이 우리를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9. 사단에게 괴롭힘과 고통을 당하는 현실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10. 하나님이 세상을 사단의 권세 아래 하락하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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