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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베들레헴에 오신 왕

본문 / 2: 1-12

 

 

1. 동방박사와 예수님

신자라면 누구든지 예수님 앞에서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자신의 죄가 무엇임을 알고 죄인이라고 하는 사람과 죄가 무엇인 줄도 모르면서 상투적으로 죄인입니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국 상투적으로 죄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말로만 죄인이지 정작 자기 자신 스스로는 항상 의인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의의 증거로서 자신의 종교 생활을 앞세우게 됩니다.

그런데 죄를 알고 진심으로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등장하는 또 하나의 잘못된 모습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죄만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죄만 바라보는 사람은 자신의 모습에서 실망을 하게 되고 나중에는 크나큰 신앙의 고통 속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자신의 죄에서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것까지는 필요하지만 실망에서 고통으로 빠져버리면 결국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은 우리를 정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그 정죄 속에서 우리를 지키고 있는 용서와 사랑을 보게 하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자신의 죄 속에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함께 볼 수 있어야 기쁨이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더러운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전혀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이 우리들의 신앙에 크나큰 힘이 될 것입니다. 신자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있는 모습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거룩한 말씀을 통해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동방박사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절에서 베들레헴에서 예수가 태어났다고 기록합니다만 지금 별을 보고 찾아온 동방의 박사들은 베들레헴이 어디인지 모르고 별의 인도를 따라 유대 땅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유대 땅에 들어서자 그 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별이 보이지 않았다는 증거는 9절부터 보면 “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2:9-10)고 합니다. 헤롯 왕이 있는 예루살렘 왕궁에서 박사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선지자 미가를 통해 예언된 곳이 베들레헴이라는 것을 듣게 되고 다시 베들레헴으로 가는 도중에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서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섭니다. 그래서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합니다.

별이 인도하여 유대까지 왔으면 계속하여 베들레헴으로 곧장 인도하여 가면 될 텐데 왜 갑자기 별이 보지지 않아서 예루살렘에 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게 하였을까요? 예루살렘에 가지 않았다면 유아 살해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의 관심은 박사들에게 두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지금 아기 예수께 예물을 드리면서 경배하는 박사들의 신앙을 소개하려고 이 말씀을 남겨 놓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예수님 뿐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즉 자기 백성과 자기 백성 아닌 자를 구별하시는 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그러면 자기 백성은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 본문 앞 마태복음 1장에 등장하는 요셉과 누가복음 1장에 등장하는 마리아와 같이 예수님이 자기의 삶에 개입하시자 자신에게 오게 된 수치와 멸시를 감당하며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면서라도 주의 뜻을 받아들이는 자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수치와 멸시 즉 자기 손해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따르는 것이고 예수님의 백성된 모습입니다.

이러한 자기 백성과는 다르게 자기 스스로 의를 드러내려고 하고 자신의 행위를 가지고 의의 근거로 삼으며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면 세상에서 잘되고 성공한다는 생각 속에서 자신보다 못해 보이는 자들을 무시하는, 자기 백성이 아닌 자를 구별하기 위해서 임마누엘로 오신 분이 예수님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박사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예언하셨던 임마누엘을 이루시기 위해서 즉 예루살렘에 대하여 심판을 선포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예루살렘에 있는 너희들은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은 박사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시는 것입니다.

 

2. 참 왕이 오심

오늘 본문 3절부터 보면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2:3-5)라고 합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느냐는 질문에 헤롯왕과 예루살렘이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헤롯은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가족까지 살해한 왕입니다. 이런 헤롯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이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은 것은 지금 엄연히 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헤롯 너는 왕이 아니라는 심판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헤롯만이 아니라 대제사장과 서기관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에게 유대인의 왕이 오셨다는 소식은 기쁜 소식이 아니라 심판의 소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이에 대하여 연구하고 알아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살해하려고 합니다. 헤롯왕이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에 나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대제장과 서기관들이 미가 선지자가 예언한 미가서 52절의 말씀을 들어서 베들레헴에서 난다고 대답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날 것을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단지 예수님이 탄생할 장소를 예언하고 있는 것만이 아닙니다.

미가서 5장에 보면 “1. 딸 군대여 너는 떼를 모을지어다 그들이 우리를 에워쌌으니 막대기로 이스라엘 재판자의 뺨을 치리로다 (베들레헴에서 다스릴 자가 나오리라)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3.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5.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6.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폐하게 하며 니므롯 땅 어귀를 황폐하게 하리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리라 7.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며 8. 야곱의 남은 자는 여러 나라 가운데와 많은 백성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들은 수풀의 짐승들 중의 사자 같고 양 떼 중의 젊은 사자 같아서 만일 그가 지나간즉 밟고 찢으리니 능히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라 9. 네 손이 네 대적들 위에 들려서 네 모든 원수를 진멸하기를 바라노라 (심판)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이르러는 내가 네 군마를 네 가운데에서 멸절하며 네 병거를 부수며 11. 네 땅의 성읍들을 멸하며 네 모든 견고한 성을 무너뜨릴 것이며 12. 내가 또 복술을 네 손에서 끊으리니 네게 다시는 점쟁이가 없게 될 것이며 13. 내가 네가 새긴 우상과 주상을 너희 가운데에서 멸절하리니 네가 네 손으로 만든 것을 다시는 섬기지 아니하리라 14. 내가 또 네 아세라 목상을 너희 가운데에서 빼버리고 네 성읍들을 멸할 것이며 15. 내가 또 진노와 분노로 순종하지 아니한 나라에 갚으리라 하셨느니라”(5:1-15)고 합니다.

이 미가서의 말씀을 요약하면 베들레헴이 작은 고을이지만 이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가 나올 것인데 그의 근본은 아주 먼 옛날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영원하신 분이 이 역사 속에 여인의 해산으로 오셔서 적을 물리치고 남은 자를 구원하신다는 내용입니다. 미가서의 베들레헴이라는 한 장소만이 아니라 적어도 베들레헴에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가 오셔서 무엇을 하시는지를 함께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구원받고 남은 자들의 모습이 7절을 보면, 야곱의 남은 자는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인생을 기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는 모든 무기들을 부수어 버리고 점쟁이도 끊어버리고 우상도 부수어 버림으로 사람들이 손으로 만든 것들을 다시는 섬기지 않는 자들이 바로 심판을 통하여 남은 자들입니다

이처럼 미가서의 내용은 자신의 죄의 모습을 깨닫고 그 죄 앞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발견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 자신들이었기 때문에 미가서에 기록된 말씀도 결국 죄의 모습을 드러내고 심판하겠다는 예언이었지만 당시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은 단지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신 장소로만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적인 생각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바라볼 때 말씀을 통해서 발견하는 것은 십자가가 아니라 전혀 반대된 것임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잘 아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조건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성경을 잘 아는 것을 가지고 당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교만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성경을 잘 아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교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고 또 미가 선지자의 예언을 통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실 이가 베들레헴에 왔다는 소식을 그들이 들었다면 그들은 얼른 베들레헴으로 찾아가서 오신 왕에게 경배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경배하려고 가지 않습니까? 왜 그런 것입니까? 이미 자기들이 왕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왕이 되어있는데 다른 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박사들은 이 소식을 예루살렘의 헤롯왕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입니다. 이들은 결코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왕이 태어났다면 이제 자기들은 그 왕에게 복종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놓기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7절부터 보면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습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자기에게도 알려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자신도 그에게 경배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실상을 그 왕으로 오신 이를 살해하기 위한 의도입니다. 이런 모습이 헤롯의 모습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나의 왕 됨을 방해하는 자는 누구든지 제거할 만반의 마음 자세가 되어있습니다. 물론 그 형태는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권력이 있는 자에게 온갖 충성을 다 바치는 자들도 결국 권력에 대한 의지가 있기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권력이 그에게 없다면 그렇게까지 그에게 충성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으로는 자신의 왕 됨을 위한 일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에 과연 예수님을 나의 왕과 주인으로 믿으십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왕과 주인으로 섬김으로 무언가 떨어지는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들과 제자들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6장의 오병이어 이적 이후에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는 먹고 배불러서 따라갑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따라 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살과 피가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라고 말씀하실 때에 군중들을 어렵다고 하면서 다시는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하시자 영생의 말씀이 여기에 계시는데 우리가 어디로 가겠느냐고 말은 했지만 제자들 또한 속으로는 권력에 대한 의지로 따라갔습니다. 그래서 항상 누가 크냐라는 문제로 다투었던 자들이 제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었기에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다 부인하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 성경에서 모든 악한 자들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보시면 성경을 제대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내가 주인공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볼 때도 마치 우리가 영화나 소설을 보면서 언제나 주인공에 자기를 대입시키듯이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결국 내가 주인공이고 왕이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왕이 되고 싶어서 더 출세하고 싶어서 서울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아주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 왕이 오신다고 알고는 있지만 지금 그들은 예루살렘의 왕궁을 중심으로 정치와 종교와 경제의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은 그런 곳에 오시지 않습니다. 그런 곳에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 보시기에 너희는 아니라는 통보를 동방의 박사들을 통하여 알려 준 것입니다

그렇게 동방의 박사들이 전하여 준 소식, 이스라엘의 왕이 나셨다는 소식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은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왜 소동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그 당시 왕이었던 헤롯의 아들이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왕이 태어났다고 하는 것은 결국 반역자가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반역자를 멸해야 하는 것이 왕들의 일입니다.

우리도 이 정도의 왕의 아니지만 나의 왕 됨을 방해하는 자는 다 제거하고 싶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나는 왕이로소이다.’ 하는 것이 우리에게 다 있습니다. 그래서 남이 대접하여 주고 알아주고 칭찬하면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반면에 무시하면 그들을 어떻게 하든지 이기고 싶은 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왕이 오셨다는 소식이 과연 기쁜 소식인 것이겠습니까아마도 예루살렘 왕궁의 헤롯과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처럼 우리 또한 결코 기쁜 소식이 아닐 것입니다.

다시 10절부터 보면 “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2.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2:10-12)고 합니다.

박사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고 합니다. 왕이 오셨다는 별을 다시 보고서는 기뻐서 그 별이 인도하는 집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지 제법 시간이 지났습니다.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 합을 열어 황금과 유양과 몰약을 예물로 드립니다.

이 예물을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합니다만 왕에게 드리는 예물로 보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고 이곳에서 박사들이 하루를 잔 모양입니다. 그래서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갔습니다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하고 그 왕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버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알려 주게 되면 왕을 죽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왕이 오셨다는 똑같은 이야기가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의 소식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의 소식이 됩니다. 별을 보고 찾아온 이방인인 동방박사들은 아기에게 예물을 드리며 경배를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왕으로 있는 헤롯은 진짜 왕을 살해하려는 의지로 충만합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동방의 박사들입니까? 아니면 헤롯입니까? 성경을 보고 교회를 다니는 일을 우리는 왜 하고 있는 것입니까? 베들레헴에 왕으로 오신 그분을 나의 왕으로 모시기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나의 왕 됨을 위한 것입니까?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 우리 자신을 위하여 보면 성경은 그렇게 보여집니다. 이것을 성경의 도구주의라고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만들 때에 여러 가지 도구들이 필요하듯이 성경도 나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썩어질 세상의 생존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성경입니다. 복음은 썩지 아니할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 복음입니다

 

3. 베들레헴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보는 것은 예루살렘의 왕이 아닌 베들레헴에 오신 왕을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선지자를 죽이는 것이며 결국 왕을 죽이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예루살렘을 향하여 우셨습니다. 어미 닭이 병아리를 모음 같이 이스라엘을 주의 품에 품으려고 하였으나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 중심이 예루살렘입니다. 이곳이 바로 애굽이며 소돔이며 예수님을 죽인 곳이 됩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이가 예루살렘에서 배척을 받고 죽임을 당합니다. 그 이유는 세상의 왕 됨을 원하는 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 메시아가 오셨습니다. 세상의 힘을 추구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다시는 인생을 의지하지 않고 우상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만 의지하는 자들을 만들어 내시기 위하여 베들레헴에 왕으로 오셨습니다

이 베들레헴은 창세기 35장에 보면 라헬이 죽어 묻힌 곳이며 또한 룻의 남편 보아스의 고향입니다. 사사시대 때에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떡집에 떡이 떨어졌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배반하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이때에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이민을 갑니다. 그런데 10년 만에 두 며느리를 보았지만 남편과 두 아들이 죽고 과부만 셋 남았습니다.

이때 베들레헴에 다시 떡이 주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나오미가 돌아옵니다. 이때 함께 따라온 여인이 룻입니다. 나오미가 돌아올 때에 베들레헴 사람들이 나오미가 돌아왔다는 말을 하자 나오미는 자신을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나오미는 기쁨이지만 마라는 슬픔과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방 여인 룻이 기업 무를 자 보아스를 만남으로 나오미의 노년이 유업을 이을 아들은 품에 안게 됩니다. 나오미가 마라에서 다시 나오미가 됩니다. 떡이 없다고 이민 갔습니다. 이민 갈 때는 풍족하게 갔지만 돌아올 때는 텅 비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텅 비어버린 나오미가 이방 여인 룻과 기업 무를 자 보아스를 통하여 아들을 품에 안게 됩니다. 이들의 후손으로 이새와 다윗이 태어난 곳이 베들레헴입니다

이 베들레헴에 왕으로 오신 것은 그 지명에도 뜻이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집이라는 베이트와과 떡이라는 레헴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베들레헴은 떡집입니다. 베들레헴에 오신 왕은 자신의 살과 피를 짐승 같은 자들에게 제공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베들레헴의 구유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백성은 성령과 말씀을 통하여 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주셔야만 되는지 알고 믿게 됩니다. 이렇게 믿게 되는 자들은 반드시 심판을 통하여 믿게 됩니다. 그 심판이란 더 이상 인생을 의지하지 않고 더 이상 우상을 의지할 수 없도록 만들어 내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에 보면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1:18-21)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동방의 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받아 베들레헴에 가서 아기 예수께 경배를 하였습니다. 이분이 만왕의 왕이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는 동방박사 별의 인도를 받아 왔듯이 기록된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에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를 말씀으로 인도하시면 말씀을 통하여 베들레헴에 오신 왕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살과 피를 제공하심으로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는 복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록된 이 말씀을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통하여 보면 베들레헴에 오신 그리스도를 만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어두움을 비추는 등불과 같습니다. 이 캄캄한 세상에서 말씀이 등불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샛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에 떠 오르기 까지 이것에 주의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옳은 것입니다.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고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는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확실한 예언이 기록된 말씀이며 이 말씀을 통하여 베들레헴에 왕으로 오신 분의 그 희생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살려내시는 것을 보게 되고 믿게 되는 일이 오늘날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 22장에 보면 “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22:16-17)고 합니다.

여기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광명한 새벽 별이라고 합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목마른 자들입니다. 세상에 목말라 하면서 썩을 떡과 마시고도 갈한 세상이 주는 물을 마시다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후에 정말로 의에 목마른 자가 되어 값없이 생명수를 마시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들은 왜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 오셔서 자신의 살과 피를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수로 제공해야만 아는지 비로소 알고 믿게 됩니다. 오늘도 이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신자들이 하는 죄인이라는 고백의 두 종류는 무엇이며 또 그 고백 속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2. 성경이 우리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3.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4. 수님이 구원하신 자기 백성과 자기 백성이 아닌 자는 어떻게 드러난다고 합니까?

 

5. 이스라엘 왕의 탄생이 예언된 미가서 5장에는 그 밖에 어떤 예언이 있습니까?

 

6. 성경을 잘 아는 자들이 미가서 5장에 있는 그 밖의 예언을 무시하는 까닭은 무엇이며 또 왕이 그것에 나셨음을 알면서도 경배하러 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7. 주를 믿는다는 우리에게 주님이 왕인지 아니면 우리가 왕인지 무엇으로 알 수 있다고 합니까?

 

8. 성경의 도구주의라는 것은 무엇이며 또 진정한 복음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9. 베들레헴은 무엇 뜻이며, 예수님이 베들레헴 구유에 오신 의미는 무엇입니까?

 

 

10. 동방의 박사들이 별을 통하여 나신 예수님을 만나듯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통하여 주를 만나며 또 그렇게 만난 분은 어떤 분이라고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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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6 2024 1월 7일 / 요한복음 27. (요5:30-38) 증거자의 참된 증거 관리자 2024.01.07 16
705 2024 1월 7일 / 신년감사예배 / (삼하17:15-20 ) 참말과 거짓말 관리자 2024.01.07 7
704 2023 12월 31일 / 요한계시록 42. (계12:1-6) 아이와 여자와 용 관리자 2023.12.31 9
703 2023 12월 24일 / 요한복음 26. (요 5:19-29)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관리자 2023.12.24 11
» 2023 12월 24일 / 성탄감사예배 / (마 2:1-12) 베들레헴에 오신 왕 관리자 2023.12.24 9
701 2023 11월 17일 / 요한복음 24. (요 5:9-18) 베데스다에서의 은혜와 율 관리자 2023.12.17 9
700 2023 11월 17일 / 요한계시록 41. (계 11:15-19) 신자에게 확실한 것 관리자 2023.12.17 11
699 2023 12얼 10일 / 요한복음 24. (요 5: 1-9) 베데스다 전설과 신앙 관리자 2023.12.10 9
698 2023 12월 10일 / 요한계시록 40. (계 11:7-13) 두 증인의 승리 관리자 2023.12.10 11
697 2023 12월 3일 / 요한복음 23. (요 4:43-54) 도무지 믿지 아니하는 자들 관리자 2023.12.03 9
696 2023 12월 3일 / 요한계시록 39. (계 11:3-6) 두 증인의 권 관리자 2023.12.03 9
695 2023 11월 26일 / 요한계시록 38. (계 11:1-2)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 관리자 2023.11.26 14
694 2023 11월 19일 / 추수감사주일 / (출 23:14-17) 이스라엘의 3대 절기 관리자 2023.11.19 13
693 2023 11월 12일 / 요한복음 22. (요 4:39-42) 우리가 친히 듣고 앎이라 관리자 2023.11.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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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괄 관리자 : 예원교회 방송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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