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방문자 수

방문자수

전체 : 4,212,666
오늘 : 195
어제 : 267

페이지뷰

전체 : 78,749,321
오늘 : 789
어제 : 1,751
조회 수 148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 주의 사랑이 너희 무리와 함께 할 지어다

본문 / 고전16:13-24

 

1. 죄성

내일은 민족의 명절이라고 하는 ‘설날’입니다. 설날이 되면 제일 많이 하는 인사 중에 하나가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새해가 밝았다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성경에서는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결국 옛날에 있었던 것이 다시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보고 이것이 새로운 것이라고 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고린도전서를 1년 여 년 동안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고린도전서가 이렇게 길고 오래 걸린 것은 그만큼 교회 안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문제들이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가 구원 얻는 자들에게만 능력이지 구원 얻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고린도 교인들은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다른 사람보다 무언가 뛰어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자기자랑들이 나온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십자가를 믿는 자기까지 자랑하고 내세우고 하였기에 온갖 문제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문제들은 파당의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음행과 우상제물의 문제, 세상의 법정에 소송하는 문제와 결혼과 이혼의 문제,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의심, 성찬의 문제, 은사들의 문제, 부활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 대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해 아래 새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있었던 것이 다시 있을 것입니다. 무엇을 가리켜,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고 하여도 이미 옛날에 있었던 것들입니다. 그러면 어차피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또 나중에도 결국 그럴 것이니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겠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기억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마음대로 살도록 지음을 받은 자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세상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것이 죄입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어떤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야 당연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인지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전16:13)고 합니다. 여기 깨어 믿음에 굳게 선다는 것은 그저 ‘믿습니다’ 하면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똑바로 차려서 무엇이 믿음인지 분별을 하고, 그 바른 믿음 위에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위에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합니다. 흔히들 여자의 마음을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고 하는데 그렇게 이리저리 흔들리지 말고 강건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전16:14)고 합니다. 이 말씀이 고린도전서의 결론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깨어서 믿음으로 하지 않고, 사랑으로 하지 않기에 일어나는 문제들인 것입니다. 파당이 생기는 문제를 예로 들어 설명하여 보겠습니다. 자꾸 파당이 생기는 것은, 결국 자기가 옳다고 하기에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해 옳고 그름만 분별하여 시비만 가리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파당이 생기에 되면 사생결단으로 상대방을 죽여야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니 온갖 것을 다 동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동원하고, 심지어는 하나님도 다 동원하면서 자기주장이 옳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주장 속에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넣으려고 합니다. 그런 마음이 사실 우리 안에 다 들어있습니다. 그러니 10명이 모이면 열개의 파당이 생기고, 100명이 모이면 백 개의 파당이 생긴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선악과를 따 먹고 난 인간은 자기 밖에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뱀의 유혹처럼 마치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처럼 되어 자기중심의 법을 만들어 내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살아야 하는데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들 각자가 그 법을 스스로 자기중심의 법으로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 자기 마음에 들어야만 합니다. 사람도 그러하고, 돌아가는 모든 환경과 조건도 자기 마음에 들어야만 합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복에 대해서도 스스로 법을 만들어 인간들이 추구하는 복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복 받았다고 하고, 없으면 마치 복을 받지 못한 사람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로 말미암아 지배를 받고 사는 인간들의 실상인 것입니다. 자기 밖에 모르는 자들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모두 다 자기중심 적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스바냐 2장을 보겠습니다. “이는 기쁜 성이라 염려 없이 거주하며 마음속에 이르기를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 하더니 어찌 이와 같이 황폐하여 들짐승이 엎드릴 곳이 되었는고 지나가는 자마다 비웃으며 손을 흔들리로다”(습2:15) 이 말씀은 이스라엘을 둘러싼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웃나라들이 받을 벌에 대한 내용 중 앗수르를 심판하시는 내용입니다.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고 말하는 그들의 성읍이 황폐하여 들짐승의 거처가 되고 그것을 지나가는 자들이 비웃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고 하는 교만이 그들을 이렇게 심판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푼 십계명 중에 첫 번째 계명에 해당하는 말씀, 즉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20:3)는 하나님의 말씀을 죄인 된 인간이 자기중심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는 것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실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의 마음속을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다 이 말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고 소리소리 지르는 우상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2. 자기 사랑

이런 자들의 특징은 모두가 자기 사랑으로 귀결됩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여도 자기 사랑입니다. 은사를 사용하여도 자기를 위하여, 지식을 사용하여도 자기를 사랑하여 나오는 것들이기에 다 덕을 세우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하라고 합니다. 그런 사랑으로 하는 몇 사람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고전16:15-18) 스데바나의 집은 아가야의 첫 열매라고 합니다. 아가야 지역의 전도의 첫 열매인데 이 스데바나가 성도를 섬기기로 작정하였다는 것입니다. 스데바나와 함께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함께 왔는데 이런 사람들이 고린도 교회의 부족한 것을 채웠다고 합니다. 이들의 나와 너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으로 행한 것입니다. 사랑으로 하지 않는 것은 자기만족은 되지만 받는 이를 답답하게 하지만, 사랑으로 하는 것은 그 사랑을 받는 자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어서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전16:19-20)고 합니다. 아시아의 교회들과 신약에서 자주 언급되는 아굴라와 브리스가입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집에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성도들이 그 집에서 모인 것입니다. 이들이 고린도교회에 안부를 전한다고 하며 그리고 너희도 서로 거룩하게 문안하라고 합니다. 여기에 언급된 이런 사람들이 성도를 섬기고 자기의 집을 성도들이 모임의 장소로 내어놓고 하는 일들을 과연 무엇으로 하였겠습니까?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시기질투로 한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어떤 보상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사랑으로 한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으로 하는 것 자체가 은혜요 복인 것입니다. 왜 그런지 다음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고전16:21-22) 바울사도가 자신의 편지임을 확인하기 위하여 친필로 쓰는 부분인데 그중에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라는 이 말씀에 아멘이 되십니까? 함부로 아멘하기 힘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동안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무엇을 할 때에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사랑하여 한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 그런 우리들에게는 큰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바로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종교는 서로 다르지만 인간이 다 서로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라고 하는 것이 종교이며, 신의 뜻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요번 성탄절에도 어느 성당 벽에다가 어느 사찰에서 보내온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 합니다’ 하는 현수막을 붙여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나중에 석탄일에는 아마도 성당에서 보낼 것입니다. 그런 것을 사랑이고 자비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고 인간을 사랑하셔서 메시아를 보내셨는데도 그 메시아를 믿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느냐는 것입니다. 믿지는 않아도 착하게 살면 천국 간다고 여기는 것이 세상의 종교가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오늘 본문에 있는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라는 말씀은 굉장히 기분 나쁘게 들릴 것입니다. 아마 믿는다고 하는 분들도 이 말씀을 하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이 말씀을 지워버려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관심사는 자기 아들을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그 아들 앞에 모든 무릎이 꿇는 것을 인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또한 그 아들을 대적하는 자들은 영원한 지옥형벌에 보내심으로 또한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왜 그래야 하느냐고 우리는 물을 처지가 못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기에 그런 질문 자체가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 아들을 알고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그 분을 나의 주로 고백하고 그분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는 일이 은혜로 우리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한 자는 저주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과연 그분을 사랑하고 있기나 하는 것입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나를 사랑하면서 하는 것은 아니냐는 것입니다. 나를 위하여 교회오고, 나를 사랑하여 헌금하고, 나를 사랑하여 무엇을 하였다면 그것은 저주를 받는 것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모든 인생, 즉 자기를 위하여 살아온 모든 세월이 다 하나님의 진노를 차곡차곡 쌓아온 것입니다. 연애를 하여도, 결혼을 하여도, 직장을 선택하여도, 교회를 선택하여도, 모두가 자기 사랑이 우선이지 과연 예수님을 사랑하여 한 것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입니다. 이제 그런 삶에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기중심 적인 삶에서 벗어나 주를 사랑함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3. 사랑하는 자로

결국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모든 문제들은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교회의 모든 문제들인 것입니다. 바로 주를 사랑하지 않기에 나오는 문제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아들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주께서 임하십니다. 언제 오신다는 것입니까? 2천 년 전에 오신다고 하셨는데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의 시간적 개념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오심으로부터 이 세상은 심판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미 종말의 세상인 것입니다. 믿는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는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철저히 자기를 사랑하며 살아왔기에 자신이 저주를 받아 마땅한 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성경에서는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16:27)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행실에 대해서 요한계시록 19장에서는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계19:8)고 합니다.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입고나갈 세마포 옷이 성도의 옳은 행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 옷을 직조하는 실이 옳은 행실이라고 하면 과연 우리는 지금까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그리고 내 이웃들을 섬겨 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의의 옷을 입혀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이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 저주가 바로 내가 받을 나의 저주인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세월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더욱더 자신의 죄의 깊이와 넓이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교묘하고 뿌리 깊은지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또 하나 알게 되는 것은 그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단번에 완전히 영원히 용서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거부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이 용서 받은 자는 많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런 주님의 사랑이 이미도 와 있습니다. 이제는 사랑을 할 수 없기에 사랑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을 위해 살려고 하기에 사랑을 안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발에 자신의 전부인 향유를 부은 여인처럼 오늘도 우리 자신을 깨뜨리심으로 내 안에 아름다운 향유 되신 주님의 향기가 우리의 삶에 늘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깨어 믿음에 굳게 서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2. 고린도교회 문제가 생긴 이유는 무엇이고 또 그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입니까?

3. 사랑으로 하는 것은 무엇이며 또 그것으로 말미암아 받은 복은 무엇입니까?

4.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시각과 성경의 시각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5. 예수를 제대로 믿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어떻게 된다고 하십니까?

6.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을 하시기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5 4월 8일 부활주일 / 부활의 도와 그 도 전함을 싫어하는 자들 관리자 2012.04.04 1536
114 4월 1일 2부 /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과 같은 믿음 관리자 2012.04.04 1362
113 3월 25일 1부 / 질그릇에 담긴 보배만을 위하여 265 관리자 2012.03.25 3196
112 3월 18일 2부 / 십자가 속에 감추어 두신 복음의 광채 170 관리자 2012.03.18 27917
111 3월 11일 1부 /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영광에서 영광으로 관리자 2012.03.11 1504
110 3월 4일 2부 / 새 언약의 일꾼과 영원한 영광 관리자 2012.03.04 1373
109 2월 19일 2부 / 생명과 사망의 냄새로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향기 관리자 2012.02.19 1540
108 2월 19일 2부 / 생명과 사망의 냄새로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향기 관리자 2012.02.19 1312
107 2월 12일 2부 / 믿음을 주관치 않고 기쁨을 돕는 자 관리자 2012.02.19 1428
106 1월 29일 / 주 안에서의 환난과 위로 관리자 2012.01.29 1470
» 1월 22일 1부 / 주의 사랑이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관리자 2012.01.20 1481
104 1월 15일 2부 /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연보 관리자 2012.01.20 1495
103 1월 8일 2부 /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 10 관리자 2012.01.07 1468
102 2012년 1월 1일 신년감사 /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한 2012년 관리자 2012.01.01 1463
101 12월 25일 1부 / 구원자를 잉태한 자들의 기쁨의 성탄 관리자 2011.12.29 1424
100 12월 18일 2부 / 살려주는 영으로 사는 자들의 삶 관리자 2011.12.29 1445
99 12월 4일 2부 / 우리의 소망되신 부활의 첫 열매 관리자 2011.12.03 1565
98 11월 20일 추수감사 주일 / 우리는 무엇으로 감사하며 삽니까? 관리자 2011.11.19 1463
97 11월 13일 2부 /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다시 알게 하노니 관리자 2011.11.13 1360
96 11월 13일 2부 /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다시 알게 하노니 관리자 2011.11.13 1607
Board Pagination Prev 1 ...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Next
/ 37

총괄 관리자 : 예원교회 방송실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