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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생명과 사망의 냄새로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향기

본문 / 고후 2:12-17

 

 

1. 사도 바울

우리들이 살면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거나 또는 명절에 가족들과 친척들을 만나서 이야기꽃을 피울 때 주로 하는 이야기들이 무슨 이야기입니까? 자신이 세상에 살면서 연약하여 실패한 모습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아마도 세상에서 성공하고 승리한 것을 이야기 하며 사는 것이 우리들일 것입니다. 자신의 실패를 보이기 싫어서 일부러 성공한 것 인양 돈을 빌려서라도 호기를 부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예수를 믿어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나타나는 것입니까? 예수를 믿고서 자신이 어떻게 세상에서 성공하였는가를 자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를 믿었는데도 계속하여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면 무언가 예수를 잘 못 믿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기에 교회에서조차 위장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면 우리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생각들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김을 주신다는 말씀도 나오지만 그 이김이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의 성공이나 승리의 이야기가 아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어떤 모습으로 증거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고전2:12-13)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갔고 주 안에서 복음의 문이 열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복음을 계속 전하여야 할 텐데 디도를 만나지 못하여 마게도냐로 갔다는 것입니다. 디도를 드로아에서 만나기로 하였는데 빨리 오지 않자 여러 가지 근심과 걱정이 된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가지고 와야 할 디도가 오지 않으니 걱정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와 가까운 마게도냐로 가서 만나고자 그리고 간 것입니다. 마게도냐로 가서 디도를 만난 내용에 대하여는 고린도후서 7장에 보면 있습니다.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고후7:5-7) 바울 사도가 드로아에 복음의 문에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의 염려로 인하여 마게도니아로 왔습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무슨 평안한 일이 있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였습니다. 밖으로는 다툼이고 안으로는 두려움이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어디를 가든지 씩씩하게 불굴을 투지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닙니다. 두렵고 떨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비천한 자라고 합니다. 그런 비천한 자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위로를 하셨다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회개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또한 기쁘게 여깁니다. 이런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이 시비를 건 것입니다. 바울은 신실하지 못하고, 연약하고, 실패 하였다고 몰아붙이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을 보면 그런 말을 들을 만도 합니다. 에베소서에서는 광주리타고 몰래 밤에 도망을 쳤을 뿜만 아니라 고린도 교회에서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물러나서 편지를 보냈습니다. 드로아에서는 복음의 문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마게도냐로 갔으며, 마게도냐에서는 두렵고 떨었고 안팎으로 환난과 핍박을 당하였습니다. 그런 바울사도가 이김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복음의 향기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2:14) 이기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기게 하시는 모습이 약하고 두렵고 떠는 모습이며, 도망 다니는 모습입니다. 우리들 생각하고는 전혀 다른 모양새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슨 이김이 되는 것입니까? 자신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도들을 사용하시는 방법은 세상이 볼 때에는 실패의 모습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오늘 본문의 말씀은 새 언약의 일군의 영광을 말하는 시작부분입니다. 그렇다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예수님께서 가지셨기에 가는 곳마다 승리하면서 세상의 권력을 굴복시키며 정복해나가야 할 텐데 정 반대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교를 말하면서 대부분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마치 예전에 제국주의자들이 무력으로 약한 나라들을 정복해 나가면서도 그 명분은 선교한다고 내세운 것처럼 정복하고 이기는 것을 선교의 승리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데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세상의 이김과 승리를 복음에도 그대로 적용하여 교회가 힘이 있어야 전도도 구제도 선교도 많이 한다고들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힘이란 바로 숫자와 돈인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이란 그런 힘으로 증거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한 이유는 세상의 힘을 의지하였기에 망하게 된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백하기를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20:7)고 합니다. 하나님도 이스라엘의 왕 된 자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신16:17)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도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도 “다윗이 그에게서 병거 천 대와 기병 칠천 명과 보병 이만 명을 빼앗고 다윗이 그 병거 백 대의 말들만 남기고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대상18:4)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전쟁에 있어서 병력과 무기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신앙에서 나온 행위인 것입니다. 전쟁에서 사람들 보기에는 이겼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도리어 하나님 보시기에는 진 것입니다. 반대로 사람들 보기에는 진 것 같아도 그 진 싸움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더 의지해야 함을 알고 믿게 되었다면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이긴 싸움인 것입니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사2:22)고 합니다. 그런 인생들이 만들어내고 사용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일에 이김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의 종들을 사용하실 때에 세상의 방법과 반대되는 방법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미 1장에서 보았듯이 너무나 심한 환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마치 사형선고를 받아 죽이기로 작정된 자처럼 사용하시는 이유는,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외부에서 보게 되면 승리하는 모습이 아니라 실패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사용하시는 것입니까?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고후2:14-16)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향기이기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말하면 제일먼저 이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 사람보다 더 착하게 살아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자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살이에서도 안 믿는 사람보다 정직하고 바르게 살고 손해를 보고 겸손하고 양보하는 그런 사람으로 사는 것을 그리스도의 향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보시면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향기와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악한 일을 함으로 손가락질 받는 것보다야 훨씬 좋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더 악착같고 더 계산적이고 더 이기적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5장에서도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고 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거기서 끝나게 되면 기독교도 세상의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윤리와 도덕적인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본질도 아님을 분명하게 아셔야만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향기란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복음을 말합니다. 복음이란 분명 기쁜 소식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은 아닌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입니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4:3-4) 복음이 복음으로 들리지 아니하는 사람은 망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바울사도가 자신을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무슨 착한 일을 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사도로 부르시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하나님께서 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향기는 어떤 사람에게는 사망의 냄새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의 냄새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란 모든 사람을 좋게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내고 돌아서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그런 복음을 전하는 자를 핍박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 모든 사람을 좋게 하는 복음은 사실 복음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믿는 자나 믿지 아니하는 자가 다 좋아하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내가 사람을 좋게 할 것인가 하나님을 좋게 할 것인가의 질문을 하면서 사람을 좋게 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걸림돌이며 이런 걸림돌이 없는 복음은 가짜 복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복음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한 편은 사망의 냄새를 맡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3. 생명과 사망의 냄새

이런 말씀은 이미 고린도전서 1장에서 말씀하였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십자가의 도 즉 복음이란 반드시 이 기능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을 두 편으로 갈라버리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보면서 저주받는 것이요 실패한 모습으로 보여서 싫다고 도망치게 되면 그 사람은 멸망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동일한 십자가를 보면서 바로 나의 죄로 인하여 대신 저주받으신 십자가이구나 하면서 그 십자가에 마음이 끌리는 사람은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에 두 강도와 같습니다. 저는 이 두 강도가 모든 인간을 대표한다고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 한 쪽 강도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네 자신도 못 구하면서 남을 구한다고 하느냐 네 자신이나 구원해보라’고 합니다. 십자가를 실패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강도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 ‘주님의 나라에 임할 때에 자기를 기억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에 화가 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똑같이 처형당하는 강도인데 한 강도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천국가고 한 강도는 믿지 않음으로 지옥 간다면 너무나 불공평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사망의 냄새와 생명의 냄새를 내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방식이 사도들에게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능력과 기적으로 모든 세상을 굴복시키는 모습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바울에게도 희한한 능력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런 능력으로 증거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난과 핍박으로 증거 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의 향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도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이런 복음을 전하지 않고 세상의 성공을 말하는 자들을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연약함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도라면 어떻게 외모도 별 볼일 없고, 말도 어눌하며, 하는 일도 시원찮은 모습이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처럼 배경 있는 사람의 추천서를 가지고 능력 있게 사역하는 우리가 진짜라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이러한 사람들을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2:17) 수많은 사람들처럼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사람들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희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포도주에 물을 혼합하는 것처럼 복음을 변질시키는 자들입니다.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사도 자신은 순전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한다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사람을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결과 온갖 핍박과 환난을 다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이 그리스도의 향기가 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어떤 사람에게는 사망의 냄새로 또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의 냄새로 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 좋은 향기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우리는 믿는 자나 믿지 아니하는 자가 다 좋아하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 했습니다. 복음은 그런 것입니다. 누군가에겐 하나님의 능력이지만, 누군가에겐 미련한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이 복음이 어떤 향기인지 잘 분별하셔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 모두는 이 일로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세상에서의 형통과 성공이라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존재로 부름 받았음을 알기에 때로는 힘이 들고, 때로는 어려워도 주 안에서의 이 일을 감당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세상으로 돌아가는 눈을 주 안에서 바로 잡아 주만 바라봄으로 어느 곳에서 누구를 만나든지 간에 우리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생명의 냄새가 충만하게 진동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두려움과 떨림 가운데서도 바울이 마게도냐에서 받은 위로와 기쁨은 무엇입니까?

2. 사람들 보기에의 이김과 하나님 보시기에의 이김은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3. 인간이 가진 기독교에 대한 오해와 그런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4. 십자가의 도, 즉 복음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두 가지 현상은 무엇입니까?

5. 바울이 경계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6.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향기란 무엇입니까?

7.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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