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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집 맡은 아들과 그 집

본문 / 3: 1- 6

 

1. 하나님의 뜻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특징 중의 하나는 다들 바쁘다는 것입니다. 그런 바쁜 세상에서 남들보다 더 빠름이 돈이 되고 반대로 더 느림은 무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빠름으로 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동차도 기차도 비행기도 컴퓨터도 정보도 모두가 속도전입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빠르게 달려갈 뿐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오늘 본문 말씀처럼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리겠습니까? 예수를 깊이 생각하면 무슨 유익이 주어지는가를 재빠르게 계산하여 볼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조차 얼마나 빠름을 요구하는지 모릅니다. 성경을 읽는 것도 45일에 성경통독 수련회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바쁜 세상이다 보니 기도도 빠르게 합니다. 기도도 자기 말만 총알같이 쏟아 놓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가버리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세상이나 교회나 간에 예수님을 생각할 틈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도 깊이 생각할 틈이 없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예수님을 얼마나 빨리 벗어나 버리는지 예수 믿는 것은 아주 초보 단계라고 가르치고, 믿은 다음에는 더 나은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를 이용하여 자아를 더욱 고양 시키는 쪽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이 하신 일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려고 하니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치를 않는 것입니다. 믿는 내가 무언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나은 점이 있어야 할 텐데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사람의 기쁨이고 보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어라고 합니까?

갈라디아서 1장에 보면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1:6-10)고 합니다.

여기 6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좇는 것을 이상하다고 합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8절에서 바울 자신도 저주를 받는다고 합니다. 다른 복음이란 사람들의 기쁨을 더하여 주는 것이며, 사람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인간의 죄를 드러내는 것이지 인간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하신 일을 주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히브리서는 고난과 핍박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권면하기 위해 쓴 서신입니다. 신자의 힘과 위로와 소망은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나에게 어떤 분인가를 아는 앎이 우리에게 위로로, 힘으로, 담대함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을 복으로 삼아 위로와 힘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믿음과 상관없이 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믿음을 말하되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지는 믿음의 위로와 기쁨은 전혀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혈육에 속하신 예수님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로 가신 이 모든 일들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길이니만큼 어떤 고난에서도 낙심치 말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서 고난과 어려움을 거두시고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난의 길을 가르치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이 전혀 알 수 없는 예수님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마음

오늘 본문 역시 고난과 어려움에 있는 신자를 위로하고 돕는 내용들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3:1)고 말합니다.

이 말씀처럼 신자는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존재입니다. 이 신분은 환경과 형편에 의해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환경과 형편에서도 영원불변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전도나 봉사나 건축이나 다른 것을 권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보면서 그것들의 아름다움을 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을 보면서 그들이 농사짓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아니하여도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기르심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에 대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엄청 바쁘게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바쁜 이유는 내일에 대한 염려 때문입니다. 내일에 대한 염려만 없다면 행복할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을 내가 책임져야 하는데 이제는 맡길 수 있는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얼마나 완벽하고 완전한지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그 예수님은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라고 합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복음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며 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분이 우리의 사도입니다.

사도란 보내심을 입은 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입은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권세와 능력이 다 위임되어 있는 분이십니다. 그분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것이며,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사도를 증거하기 위하여 구약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입었고, 신약의 사도들이 보내심을 입은 것입니다. 그렇게 구약의 보내심을 입은 자들과 신약의 보내심을 입은 자들은 증인들이며 그들이 증거한 증거의 실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보내심을 받은 모세와 엘리야도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이며, 신약에서 보내심을 받은 제자들과 바울도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대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구약에 흠이 있는 제사장들과는 달리 자기의 몸으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심으로 완벽하고 흠 없는 대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7장에 의하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이 갈리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를 온전히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7장에 보면 “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7:26-28)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보다 더 완벽한 대제사장은 어디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약과 부족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 완벽한 대제사장을 바라보고 생각함으로 더욱더 은혜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 이 히브리서를 받는 자들은 고난 가운데 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부르신 거룩한 존재인 우리를 왜 고난과 어려움에 있게 하시고 실패도 안겨주시는 것인지 주 안에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이스라엘을 곧바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셔서 편히 살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40년을 유리하게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분명 하나님이 애굽에서 불러내신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그런 그들을 왜 40년의 세월을 떠돌아다니게 하시는 것입니까?

신명기 8장에 보면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8:2-3)고 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40년의 세월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가르침을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라면 오늘 우리들에게 있는 현재의 고난과 어려움을 모두 거두시고 편안한 삶을 살게 하시다가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일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런 삶에서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지혜를 배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히브리서 기자는 고난과 핍박 가운데 있는 신자들에게 그 길을 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함으로써 위로를 받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 그것을 누가복음 15장에 있는 두 아들의 비유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아들의 어떠함에 대해서 잘 알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5장의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해 달라는 것을 다 들어줍니다. 그가 나가서 어떻게 살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해 줍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둘째 아들의 고백이 나옵니다.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15:17-19)고 합니다.

반면에 동생과 같이 이런 고생을 안 하고 아버지 집 안에 있었던 형의 고백도 나옵니다. “29.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15:29-30)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무엇이겠습니까? 과연 누가 아버지의 집에 대해, 아버지의 마음에 대해 진정으로 아는 자가 되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고생과 고난의 길을 가게 하는 일을 서슴치 아니하신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과 같이 겪은 고난의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자식이 원하는 대로 뭐든 들어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잘못한 것이 있을 때는 가르치고 야단치면서 바른길을 가도록 힘쓰는 것이 사랑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부모의 마음으로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다스리며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49장에 보면 “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49:14-15)고 말씀합니다.

여인이 자기 자식을 잊는 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잊는 일은 없을 정도로 신자는 하나님께 기억된바 되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존재도 하나님의 백성을 흔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도우시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3. 집 그리고 맡은 자

오늘 본문 2절부터 보면 “2.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3.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3:2-5)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이 일하신 것을 모세가 일한 것과 비교하며 말씀합니다. 모세와 예수님의 일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점이라면 모세는 주인집 종이라는 입장에서 일하신 것이고, 예수님은 주인의 입장에서 일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의 이런 마음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3:6)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 즉 집과 아들 이것이 신자와 예수님의 관계인 것입니다. 집을 지은 사람이 있듯이 우리를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면서까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출하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자녀로 만든 우리를 맡은 이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나가시다가 우연히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준 차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살려주고 나서 단지 기억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구출한 자기 백성을 계속해서 도우시고 살피시면서 신자로 살아가도록 일하시는 것입니다.

집을 맡았다면 그 집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잘 보전되도록 힘을 쓰고 관리할 것입니다. 신자가 바로 예수님의 관리를 받는 대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우리에게 처해진 환경과 어려움 때문에 예수님의 이러한 마음을 외면하기도 하고, 불신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단지 우리의 육신의 편함을 제공하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미 확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보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하면 되는 것이지 내가 놓여 있는 세상에서의 상황과 형편을 둘러볼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신자가 어떤 어려움과 고난에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는 끝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내가 세상에 생존한 기간 안에 있을 수 있고 아니면 생존이 끝나는 것이 곧 고난의 끝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나라가 시작되어 계속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힘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신자에게는 절대로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세상보다 더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나라의 삶이 신자에게는 예비 되어 있습니다. 이 소망이 우리를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망에 있을 때 우리의 자랑거리는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일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맡으신 집다운 모습인 것입니다.

신자는 천사보다 존귀하다고 했습니다. 존귀함의 의미를 세상 것에서 찾으려고 하지 마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나라에 거하는 것에서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나라에 누가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 나라는 오직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만 해당 됩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들이라면 우리들은 분명 복 받은 자들입니다. 이 복이 우리들에게 크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은혜의 선물로 주신 믿음이 어려울 때 힘이 되지 못하고, 힘들 때 위로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히브리서 저자의 권면처럼 집 맡은 아들로서 집을 지키시고 도우시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신자는 결코 홀로 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의 관리 아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마음을 든든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아는 자라면 예수님의 그 크신 은혜를 깊이 생각하십시오. 또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자라면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게 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육신은 비록 고난과 어려움에 있다 해도 그 심령은 구름을 타듯 가벼울 것입니다. 이처럼 가벼운 심령으로 살도록 허락하신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아 그런 신앙생활을 맛보며 누리며 감사하며 찬송하며 살아가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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