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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마라

본문 / 5:25-26

 

1. 영광에 대한 우리 생각

지난주에 우리는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에 대하여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조금 다른 각도로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육체의 일은 자기 자원()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반드시 자기 자랑과 자기 영광으로 결론을 맺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자기 자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포도나무의 가지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지만 그것은 포도나무라는 원줄기에 붙어 있기에 나오는 자연스러운 열매이기에 결코 억지가 아닙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으로부터 공급을 받아서 나오기에 업적이 아니라 성품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는 결코 업적주의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물량적으로 측량하여 높고 낮음이나 크고 작음을 비교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행하는 수많은 일들을 점수로 환산하여 채점을 합니다. 등수를 매기고 시상을 하기도 합니다. 전도, 성경읽기, 기도회 참석, 헌금, 예배참석까지 점수를 매깁니다. 세상의 회사에서나 하는 일을 교회에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다 육체의 일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인간, 즉 자신을 위한 헛된 영광인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 교단이 공식적인 신앙고백서로 받아들이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의 제1문입니다. 그리고 그 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아마도 대충 아실 것입니다. 흔히들 연말에 연예인들 시상식을 하면 상을 받은 분들이 제일 많이 나오는 말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도 틀렸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언젠가 어느 방송사 연말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한 사람이 저에게 있어 자랑할 만한 것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라는 수상소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들어 왔던 수상소감과는 전혀 다른 수상소감이었습니다. 아무튼 이런 것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한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먼저 소요리문답 1문에 대한 관련 성경구절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고 합니다. 로마서 11장에도 보면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11:36)라고 합니다.

또 시편 73편에 보면 “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73:24-26)고 합니다. 여호와를 즐거워한다는 것은 하늘과 땅에서 주님만 사모하는 것이 나의 영원한 즐거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 한 구절을 더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17:22-24)라고 합니다. 여기 보면 주의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모아집니다. 그러므로 천지창조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창조인데, 그 창조란 바로 창세전에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신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에 보면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1:16-20)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위하여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흑암의 권세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우리가 방금 읽은 골로새서 앞에 보면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1:13-14)라고 합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과연 누구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습니까? 교회들마다 비전과 목표와 꿈을 말하는데 과연 무슨 영광을 위하여 그렇게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까? 물론 말로서는 다들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지만 그 내용들이 성령의 열매가 아니라, 사람들의 힘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들이라면 그것은 육체의 일인 것입니다. 그 육체의 일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에서 헛된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을 보면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5:25-26)고 합니다.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하여야만 합니다. 성령으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아들만 영광을 받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에게 영광을 돌리는 나도 함께 영광을 받아야겠다고 나오는 것 자체가 바로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무엇을 위하여 살아왔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원하며 살아왔습니까? 우리의 남은 삶은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모두가 자기의 영광입니다. 세상에서도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서만 살아가려고 하지만, 교회 와서도 결국은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려고 합니다. 예수 잘 믿는 나, 예수 믿어서 성공한 나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명절에 외지에 나간 자식들이 시골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기를 원하는 부모의 심정이 어떤 것이겠습니까? 우리 아들딸과 며느리 사위 손자들까지 도시에 가서도 신앙생활 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목사라면 교회를 개척하여 몇 년 만에 기적적인 부흥을 일으킨 사람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국적으로 유명한 강사가 되기도 합니다.

말로서는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지만 결국 그 속내는 자기의 영광이 다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 받는 것으로만 영광 받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제쳐두고 독자적인 업적을 만들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고 하는 것이 바로 헛된 영광인 것입니다. 헛된 영광이란 아담의 유혹 속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세상의 자랑이 다 헛된 영광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목표와 방향에서 이것이 아닌 것이 과연 얼마나 되는 것입니까?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세상의 자랑이 될 만한 것들을 추구하지 않고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면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까? 그러한 삶을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는데도 감사와 기쁨이 나오고 있습니까? 교회 일만이 아니라 집안의 일이나 회사의 일에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이 나오고 있습니까? 아니면 원망과 짜증과 한숨만 나옵니까?

이것을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서로 잘 알 것이라고 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아닌 자기를 위하여 하려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교회로 다니고 있는 것은 위선과 기만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이기에 교회 오래 다닌 것이나 교회의 직분을 가지고 자기의 이력으로 삼으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속에서 지금 과연 내가 성령으로 살고 있느냐는 물어보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순전히 육체의 일과 육체를 쫓아 헛된 영광을 구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모르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굳어진 전통과 교리들로 무장하여 성령의 역사를 소멸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우리들인 것입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면 반드시 나오는 것이 서로 노엽게 하고 투기하는 것입니다. 서로 노엽게 하고 투기하는 일들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하는 것이 성경을 통하여 명백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2. 성령으로 행함

그러면 헛된 영광이 아닌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처럼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 몇 곳을 보면서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에 보면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8.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17.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8.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고전4:1-21)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교만하여진 것을 가지고 바울사도가 책망을 합니다. 7절을 보시면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잔4:7)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여러 가지 은사들이 있었는데 이런 것으로 인하여 서로 파당이 일어난 것입니다. 누가 서로 높으냐는 싸움도 일어났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은혜의 선물로 받은 것인데도 그 받은 것을 마치 자기에게서 난 것인 양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도 자기의 공로인 것처럼 자랑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헛된 영광을 구하는 인간의 실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너희가 지금 배가 불러 왕노릇하고 있다고 책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도인 바울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보고 배우라고 합니다.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다는 것입니다.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어리석고 비천하고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 맞고 정처가 없고 친히 일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당한 즉 참고 비방을 받은 즉 권면하고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한 바울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런 바울을 본받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고린도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선물인 은사조차 자신의 육체의 자랑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사는 것과 헛된 영광을 구하며 사는 모습은 이렇게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구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헛된 영광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살기를 구하여야만 합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은 방금 보았던 사도 바울의 모습이 나오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생명을 공급받는 모습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접붙임을 받아서 영원한 생명을 공급받는 삶이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광인 그 아들의 십자가의 영광을 구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은 결코 인간의 결단이나 야망으로 이루어 낼 수가 없습니다. 세월 갈수록 더욱 의존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사도를 살 소망까지 끊어지게 하셔서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으로 인도를 받는 삶입니다.

 

3. 하나님의 공급하심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무엇을 공급하여 주시는지는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이며, 이런 사람들은 헛된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자원을 지어 짜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욕심에 끌려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결과는 바로 사망입니다.

야고보서 1장에 보면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1:14-17)고 합니다. 사람이 구하는 헛된 영광은 자기 욕심에서 나온 것이기에 사망을 이루지만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다 아버지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에도 보면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4:7-11)이라고 합니다.

성도는 자기 힘으로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봉사하게 됩니다. 이것은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성령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이런 자들은 자기 이름의 영광을 위하는 헛된 영광을 구하여 분노하거나 투기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공로로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하늘에 속한 신령한 은혜와 은사들이 계속하여 공급될 것입니다.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선 우리 모두가 성령의 공급하시는 능력을 따라 섬기며 봉사하며 살아감으로 분노와 다툼과 시기가 아닌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되어지는 아름답고 복된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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