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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의 즐거움

본문 / 1: 6- 9

 

1. 지혜

여러분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영원한 것을 원하십니까? 이론적으로는 영원한 것을 원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어쩌면 우리의 마음은 비록 한시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세상을 존재하는데 힘이 되는 것을 더욱 더 원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우리의 마음이 어디로 이끌리는지 생각해 보면 신앙은 참으로 우리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더욱 더 우리 인생에 참으로 가치있는 것이 무엇이가를 배워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성경은 지혜라고 합니다. 세상에서는 배울 수 없는 하늘의 지혜인 것입니다. 이처럼 하늘의 지혜로 살아가는 그가 진정한 신자인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천사보다 예수님이 높으시다고 하는 어찌 보면 뻔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예수님이 높이 여김을 받으시는가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세상에서 오셔서 행하시는 일이 뛰어난 일이었기에 예수님이 천사보다 뛰어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은 그 누구도 할 수 없고 또 흉내도 낼 수 없는 의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의를 따르는 신자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높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별 가치없는 것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생활을 더 이상 지속해야 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믿음의 가치를 모르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장자이신 예수님

오늘 본문에서도 여전히 예수님의 높으심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1:6)라고 합니다. 여기 보면 예수님을 그냥 아들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맏아들이라고 하십니다. 오늘은 먼저 성경에서 말씀하는 장자권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장자권의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에서와 야곱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25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25:23)고 말씀하심으로 육신으로 태어난 형 에서가 장자의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동생으로 태어난 야곱이 장자의 복을 받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에서를 자연스럽게 장자로 축복하시면 무리가 없을 텐데 왜 그렇게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일하시는지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은 육체로 태어난 자식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으로 태어나야 된다는 것을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통해 열두 아들을 두게 하십니다. 그러면 그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서 장자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야곱 자신이 차남이면서 장자의 권리를 받았습니다. 그런 야곱이 죽으면서 요셉에게 장자의 권리를 줍니다. 야곱의 원래 장자는 르우벤이지만 계모와의 관계로 인하여 장자권이 박탈되고, 요셉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에서 두 지파의 몫을 차지하게 됨으로서 장자의 권리를 받게 됩니다.

요셉이 장자가 되는 것은 그의 희생 때문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음으로 형들의 미움이 심해집니다. 형들은 동생 요셉을 죽이려고 하다가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팔아버립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는 죽인 것과 동일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요셉이 그 형들을 살려냅니다. 그러므로 장자란 육체의 서열이 아니라 누가 희생하는가를 담고 있는 것이 장자의 기능입니다.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면서 손을 어긋나게 하여 오른손이 차남인 에브라임에 가고, 왼손이 장자인 므낫세에게 가도록 하여 축복합니다. 이것은 자신을 장자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므낫세가 장자이기에 야곱의 오른손의 축복을 받기 원하였지만 야곱은 손을 어긋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 혈통의 장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으로 태어나서 희생하는 자가 장자라는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야곱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언약대로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약속의 때가 이르러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어 자기 백성을 인도하여 내십니다.

출애굽기 4장에 보면 “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4:22-23)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장자로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거절하면 바로의 장자를 죽이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의 장자 만들기의 싸움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장자를 만드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그 언약의 완성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온전한 장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이 영원하신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지금 하나님의 장자가 어떤 방식으로 오게 되는지를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이 출애굽하고서 율법이 제정됩니다. 이 과정에서 모든 처음 난 곡물과 짐승과 사람까지 모두 여호와께 바쳐져야 합니다. 그것은 출애굽 할 때 어린양의 희생으로 처음 것이 대속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 레위 지파가 땅의 기업을 받지 않고 제사장의 직분을 받음으로 이스라엘의 처음 난 모든 장자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헌신되어 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 지파도 기능상 장자의 역할을 담당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에 보면 “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12:22-23)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장자들의 모임은 구약으로 말씀 드리면 이스라엘이고, 신약으로 하면 오늘날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장자이시고, 우리는 장자이신 예수님의 영을 받은 장자들의 모임입니다.

이런 장자의 영을 받은 우리라면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 것입니까?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장자는 인간 혈통의 장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으로 태어나서 희생하는 자가 장자이기에 그런 영을 받은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너무나 자명한 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1:7)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시편 104편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시편 104편의 내용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온 세계의 만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고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1044절에 보면 바람을 자기 사신으로 삼으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104:4)라고 하여 바람도 불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고 쓰여지는 하나님의 도구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 본문 7절의 말씀은 천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도구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오늘 본문 8절부터 보면 “8.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9.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 하였고”(1:8-9)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주의 보좌에 거하시는 영영하신 분으로 언급하면서 천사와 본질적으로 다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이 세상에서 어떤 대우를 받으셨습니까? 또 오늘날 우리에게서는 어떤 대우를 받고 계십니까? 사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것에는 별 관심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오직 우리는 예수님이 나에게 뭘 어떻게 해주시는가의 문제에 대해서만 생각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보좌에 앉아계시든 말든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식인 것입니다. 그리고 관심 두는 것이라고는 오직 예수님이 자신의 일을 도와주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이 서신을 쓰고 있는 히브리서 기자는 모든 관심을 예수님께만 두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 기자의 이러한 이야기에 함께 어울리고 또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관심과 초점을 예수님께 둔 신자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내용들이 재미없고, 우리의 관심을 끌 만한 내용이 아닌 관심없는 것으로 여겨진다면 그것은 성경이 어렵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관심이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에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려야만 할 것입니다. 즉 나의 관심이 없는 문제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재미가 없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3. 의와 불법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 하였고”(1:9)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높이시는 이유는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신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즐거움의 기름을 부어 네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즐거움이 되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즐거움은 오직 예수님일 뿐입니다.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신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비로소 하나님의 즐거움이 무엇이고 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 말씀으로 하면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의와 불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의를 사랑하는 것이고, 나쁜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불법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여기지 마십시오. 하늘의 의와 불법은 우리의 양심이나 윤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불법이란 하나님의 뜻에 순종치 않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성경에서 말씀하는 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즐거움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본성적으로 하나님의 뜻보다는 우리 자신의 뜻을 실현하기를 더 즐거워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처럼 불법한 자로 사는 우리의 불법을 가리기 위해서 의로우신 분이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에 있어서 의는 우리의 불법을 가리기 위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고 또 번대로 불법은 곧 자신의 죄인 됨을 생각지 못하고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과 힘으로 원하는 바를 성취해보고자 하는 인간의 모든 욕망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창세기 3장에 잘 묘사된 장면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3:7)고 하는 이 말씀이 바로 인간이 자신의 노력과 힘으로 자신의 불법을 가리려고 하는 모습이며,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3:21)고 하는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불법한 인간을 위해 일하심으로 인간의 불법을 가려 주시는 내용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씀하는 가죽옷이란 누군가가 죽음으로서만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이것은 인간의 불법을 가리기 위해 희생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즐거움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어떤 많은 일과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높이는 것에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어 모든 동류보다 뛰어나게 하신 예수님을 높이고 또 그분에게만 모든 관심을 두고 그분만을 바라며 소망하며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하나님의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엉뚱한 것을 하나님의 즐거움으로 내밀기도 합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착한 행위를 보시고 즐거워하신다는 착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약 우리 행위를 보고 즐거워하신다면 그것은 우리 행위 자체가 즐거움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그 행위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흔적이 보여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즐거움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초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그리스도께 모든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고 이것이 곧 하나님의 즐거움이 됨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즐거움보다는 나의 즐거움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즉 나의 행복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높이시는 아들을 아는 것보다는 내가 높여지고 세상에서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을 원하고, 그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죄악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죄악을 해결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분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갑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했다고 선언하는데도 그 진리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갑니다. 결국 그것은 진리로 자유케 된 적이 없어서 진리를 소유한 기쁨을 알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한 죄의 해결을 맛보지 못해서 예수님께 관심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관심을 두는 사람은 예수님으로 인한 은총의 기쁨을 맛본 자입니다. 은총을 맛보았기에 예수님에 대한 관심에서 멀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장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의 장자가 되신 우리에게 하나님의 즐거움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제는 우리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우리의 참된 행복임을 알아 그 은혜와 행복을 온전히 누리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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