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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이 기적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

본문 / 3:17-26

 

1. 이스라엘의 무지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신앙생활을 한다는 말을 자주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신앙생활은 교회에 모여 교회와 연관된 일을 하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이란, 말 그대로 신앙으로 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신앙생활을 규정짓는 것은 결코 옳은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신앙생활로 말씀하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은 신앙생활로 보지 않으시는데 우리끼리 교회에서 하는 몇 가지 행동들을 붙들고 그것을 신앙생활로 생각하고 만족하고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우리는 헛것을 붙들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종교적인 행동을 보이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만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말한 대로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기 때문에 우리가 행하는 몇 가지의 행동을 두고 신앙생활을 한다.’ 또는 못 한다로 규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앙생활을 해야지라는 생각 역시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을 의식하여 내 삶은 내 멋대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살게 하신 분이 계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는 이미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신자가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본문의 말씀에서 그 답을 함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일으킨 기적의 사건을 두고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킨 자신들을 주목하는 사람들을 향해 앉은뱅이를 성하게 한 것은 자신들의 권능이 아님을 말하면서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3:16)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국 앉은뱅이를 성하게 한 기적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말하며, 이스라엘이 십자가에 죽인 예수로 말미암은 믿음이 낫게 했다고 하는 베드로의 설교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베드로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율법과 종교를 부수려던 이단의 괴수를 정당하게 처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메시아를 죽인 자들이 되는 것이고, 살인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5장에 보면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5:27-28)고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에 감옥에 가두기도 하고, 위협을 하여도 계속하여 증거하고 다니니까 대제사장이 제자들을 잡아 심문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하였는데 너희가 계속 증거 하는 것은 결국 예수의 피를 우리에게 돌리고자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정말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었다면 당연히 그들이 살인자가 되고 메시아를 죽인 자가 되기에 제자들을 가만히 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있는 이천년 전의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죄를 실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하는 설교 내용이 오늘 본문의 내용인 것입니다. 17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3:17-18)고 합니다. 한마디로 하면 너희가 알지 못하여 그렇게 하였다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이렇게 될 것을 미리 말씀하셨고 그리고 그 말씀하신 대로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꼭 요셉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기에 더욱 미워하여 죽이려고 물 없는 웅덩이에 던져 버리기도 하고, 나중에는 직접 피를 흘리기를 꺼려하여 노예로 팔아버리는 것입니다. 죽인 것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을 이방인의 손에 넘겨서 죽이려고 한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세월이 지나고 보니 형들이 요셉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형들이 용서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요셉이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45:5)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 야곱이 죽고 나자 형들이 또 용서를 구합니다. 그러자 요셉이 다시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50:2)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을 그렇게 이루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요셉도 처음에는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하나님께서 하셨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팔았으나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생명을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을 들은 형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날마다 회개하면서 감사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지금 베드로가 모인 청중들에게 하는 말이 그것입니다. 너희는 모르고 그랬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이렇게 될 것을 예언하셨고 그렇게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너희가 정당한 것은 아니니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온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하나님의 뜻과 계획안에서 알라는 것입니다.

 

 

2. 회개 그리고 신앙생활

그래서 베드로의 이 말은 단순히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 본문 19절을 보면 베드로는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3:19)라는 말을 합니다. 베드로는 앉은뱅이가 일어난 사건을 내세워 회개하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우리가 이 기적의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주는 것입니다. 본문의 기적의 사건은 그냥 겉으로만 본다면 신기하고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 기적을 놓고 회개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적의 참된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무작정 회개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16절을 보면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3:16)는 말을 합니다. 베드로의 말을 종합해 본다면 베드로는 앉은뱅이를 유대인들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즉 앉은뱅이의 상태가 바로 너희들과 같다는 것입니다. 앉은뱅이는 스스로 자신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처량한 존재입니다. 이러한 앉은뱅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을 믿는 믿음이 그 사람을 낫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바로 이것을 두고 스스로 일어나 걷는다고 여기는 유대인들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앉은뱅이와 같은 상태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량한 존재입니다. 그러한 우리를 깨끗이 하고 성하게 한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으로 말미암은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내가 깨끗함을 입었음을 믿게 하는 것이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곧 깨끗함을 입은 자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자기 스스로 얼마든지 일어나 걷는다고 여겼습니다. 그러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나를 믿어야 낫는다고 말씀하니 그들은 이러한 예수님을 배척을 하고 죽였던 것입니다. 결국 유대인들의 우리는 스스로 일어나 걸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바로 이것을 회개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된 은혜를 거부하고 멸시한 것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말하는 회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 21절에 보면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3:21)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세상에 대한 영원 전부터의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만유를 회복하시기 위해 일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만유가 회복된다는 것은 악한 세상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으로 새롭게 시작되는 때를 의미합니다. 결국 베드로는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게 된 이 사건을 두고 만유를 회복하기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유를 회복하시고자 하신다면 지금의 이 세상은 끝장나야 할 곳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아는 신자로서 세상에서 지향하고 살아가야 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분명 세상의 사고를 좇아 살아가는 것과는 달리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기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된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다시 말해 세상의 완성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자답게 악한 세상에서의 그의 삶도 세상의 마지막과 함께 새로운 세상이 있게 될 것임을 선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과는 달리 완성된 세계를 지향하는 삶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세상에 집착한 삶에 대한 것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자에게만 있을 수 있는 회개인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는 단순히 자신의 잘못된 행동 몇 가지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앉은뱅이가 성하게 되고 낫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일은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 계속되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깨끗함을 입게 되었다는 것도 바로 그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땅만 지향하고 사는 앉은뱅이 인생입니다. 그런 우리를 일으켜 세우사 하늘을 지향하는 하늘시민으로 만들어 살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시며, 계획이시며, 뜻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기 위해 일하신다는 것을 믿고 산다면 세상에서 하나님이 이루실 그 나라를 지향하는 삶이 될 것이고, 이것이 곧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3. 신앙의 삶

우리가 교회로 모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는 단순한 종교단체가 아닙니다. 내 교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고, 내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을 많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존재하는 교회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즉 교회는 교회자체만을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면 하나님이 어떠한 계획, 즉 만유의 회복을 위해 일하심을 아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아는 자로서 모인 교회라면 당연히 보여 져야 할 것은 세상의 마지막과 하나님이 이루실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 모습 중의 하나가 바로 초대교회의 사람들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을 팔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모습인 것입니다. 네 것과 내 것이 없고 단지 맡은 자로서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그 모습이야말로 소유하기 위해 경쟁하지 않는 회복된 세계, 즉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가 할 일은 하나님이 이루실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선포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서 그 완성을 위해 일하시는데 우리는 하나님이 이루실 완성을 바라보고 살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교회에 집착을 하고, 교회가 잘됨만을 소망하는 것으로 인해 새 하늘과 새 땅을 잊어버리고 산다면 우리가 회개할 것이 무엇인가가 분명해지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이 없어서 교회가 부흥되지 못했음을 회개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서 몸의 완성을 소망하는 삶을 살지 못한 것을 두고 회개하는 것이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마음에 두고 있기에 보여지는 모습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믿음으로 앉은뱅이가 성하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믿음이 우리를 어디로 끌어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믿음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소망을 달성하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실 완성까지 우리를 붙들어 이끌어갈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참된 모습은 하나님의 완성을 보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완성된 그 나라를 보고 살아가기에 사망에 처한 세상에 대해서는 날마다 벗어나는 자로 사는 것이 곧 믿음으로 사는 것이며 이것을 신앙생활이라고 말합니다. 과연 우리가 이러한 신앙생활을 하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부터 선지자들의 입을 빌어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고 부패 된 이 세상을 여인의 후손을 통해 회복하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회복은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해 이미 시작되었으며,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 완성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로마서 8장에 보면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8:19-21)고 합니다. 성도들뿐만 아니라 죄로 인해 탄식하는 만물도 그리스도의 두 번째 나타나심을 고대하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예수님이 하늘의 영광중에 계실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는 예수님이 직접 오셔서 하늘의 영광된 모습을 보여주시면 세상이 금방 예수님을 믿지 않겠느냐 하는 아쉬움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늘에 계신 예수님 역시 영광된 하나님으로 계십니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조차도 하늘의 빛을 보고 눈이 멀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오셔서 일하신다면 예수님의 영광 앞에서 우리는 눈이 멀거나 죽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 구약 때 하나님이 모세를 대신 세우신 것처럼 그리고 선지자를 세워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고 세상의 마지막을 외치게 하셨던 것처럼 지금도 하나님은 선지자를 세워 완성될 새 하늘과 새 땅을 선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일을 맡은 자가 바로 우리들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25절에 보면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3:25)고 합니다. 우리가 곧 선지자의 자손입니다. 우리를 이 세상에 선지자로 세워서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서 선지자로 살아야 할 사람들이고, 선지자로 사는 것은 세상의 마지막과 완성될 세상이 있음을 선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일을 위해 교회가 있는 것이며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살아야 할 이유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 하나님 말씀을 들으며 무엇을 회개하고 또 어떤 삶을 살려 하십니까? 오늘 베드로의 설교가 이스라엘로 삼천 명, 오천 명 회개케 한 것처럼 우리 또한 주 앞에 그런 회개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회개하였다면 이제 우리 모두를 선지자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놀라운 뜻과 원하심만을 이 땅 가운데 선포하는 삶을 살아가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우리가 생각하는 신앙생활과 성경에서 말씀하는 신앙생활은 무엇입니까?

2. 베드로는 이스라엘의 무지와 하나님의 일하심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3. 오늘 본문에 베드로가 이스라엘에게 회개하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4. 하나님께서 만유를 회복하신다는 의미와 오늘날 우리가 회개할 내용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5. 교회는 어떤 자들의 모임이며 또 그런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합니까?

6. 믿음은 무엇이며 또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7. 예수님이 직접 영광을 보여주지 못하는 까닭과 그런 세상에서 지금 주님이 일하시는 방법과 그 일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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