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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이 허락한 복의 이름 예수

본문 / 4:12-22

 

 

1. 세례

우리는 지난 부활절 세례식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것은 결국 목사는 심부름꾼일 뿐이며 세례를 베푸시는 분은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의 세례는 이 사람이 우리와 함께 형제 되었다고 하는 공식적인 선포인 것입니다. 이미 성령이 임하셔서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아니면 지옥의 형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인식한 사람에게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께서 마태복음 28장에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의 이름으로는 안 되고 오직 예수의 이름 만이어야만 하는 것입니까? 너무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지만 성경은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서 예수님 외에 다른 것으로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도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4:12)고 하십니다. 다른 어떠한 이름으로도 안 되고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만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냥 예수로 구원이라고 하면 될 텐데 왜 그 이름”(3:16)이라고 하는지를 오늘 말씀을 통하여 확인하고자 합니다. 성경에서 최초의 이름을 받은 자는 아담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아담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이름을 부여받았다는 것은 이름을 지어주신 자, 즉 창조주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자녀의 이름을 우리가 지어 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시고 사람(아담)이라고 이름을 주시고서는 다른 피조물에 대하여 이름을 짓도록 하심으로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대접하여 주시는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다른 피조물은 인간에게 종속되는 있음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아담의 지위였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고 범죄 함으로 인하여 아담의 후손은 아담의 형상이 되었습니다(5:2-3). 그러나 이런 아담의 형상으로 나온 인간의 운명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에 보면 사람이 무려 일천년 가까이 살았지만 모두가 죽었더라 라는 족보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죽음의 세계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녹 같은 사람은 삼백 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죽음의 세상에서도 죽음을 이기는 능력은 하나님의 이름에 달린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동행한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에녹에게만이 아니라 노아에게도 나타납니다. 노아 시대 때에 홍수가 일어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신이 사람에게서 떠남으로 사람이 육체가 되어 버린 까닭입니다. 육체가 되었다는 것은, 죄 가운데 만들어진 몸이 되었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진 몸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 홍수전에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였다고 합니다. 죄악이 관영한 곳에서 나오는 인간은 역시 죄 된 인간인 것입니다. 이런 죄 된 인간 즉,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인간은 아담의 형상이기에 죽음을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어떤 사람이라도 자기의 이름으로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고 높이고자 하는 교만이 죄 된 인간의 속성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세계를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을 하시는 것입니다. 모두가 자기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세상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심판가운데서 노아의 가족은 구원을 받습니다. 지난 부활절에 우린 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물이란 노아 홍수도 물이고, 홍해 바다도 물이고, 요단강도 물입니다. 이 물속에 들어가면 다 죽습니다. 그래서 애굽 군대는 홍해 물속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은 살아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물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노아도 물로서 심판하는 가운데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세례는 온 몸이 완전히 물속에 잠기게 하는 침례가 좋을 듯합니다. 좀 더 실감이 날 것입니다. 물 속에 눕혀서 성부와 하고서, 한 일분씩 있다가 올리고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면서 한참 담가 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물로 세례를 준다는 것은 단지 씻는다는 의미보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것입니다. 나의 이름은 이제 죽었습니다. 이제 예수의 이름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하는 고백 즉, 이제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고 주님이 내 안에 사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나는 연합이 되어 있다는 고백이 바로 세례인 것입니다.

 

 

2. 복의 이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세례를 받은 우리는 여전히 자기의 이름과 자기의 영광과 자기의 자존심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세례란 한 번이 아니라 날마다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의 이름은 물속에 장사 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장사지내야 하는 것입니까? 나의 이름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버린 것이 하나님의 심판 받은 인류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이름이 들어 있는 곳은 무조건 잘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에는 관심 없는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물로서 심판하셨습니다. 오직 자기들의 이름을 위하여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자기 집을 세우는 일에는 열심이지만 그러나 방주를 만드는 일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방주를 짓는 것은 자기의 이름을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세상을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세상은 이렇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여전히 이 세상은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서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24:37-39)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의 재료는 다릅니다. 물이 아니라 불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노아 홍수 이후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세상입니까? 창세기 11장에 보면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11:1-4)고 합니다. 이 모습이 노아 홍수 이후의 인간세계의 모습입니다. 홍수의 심판에서 살아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은혜로 살려내신 것인데 인간은 또다시 자기의 이름을 위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이름에 기대를 건다는 것은 단지 이름 세 글자가 아니라 그 사람의 사상, 의지, 판단력, 지식, 가치관, 인격, 인생의 목표 같은 것이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필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께서는 아주 특별한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 이름을 인하여 복을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가 바로 아브라함인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12:1-3)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 이름으로 천한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안 되고 꼭 아브라함의 이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이름이 자신의 이름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22:18)고 하신 것입니다. 그 씨가 이삭에게서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삭도 모형이고 그림자이지 실체는 아니었습니다. 이삭이 늙어서 에서를 축복하려고 하다가 크게 놀라게 됩니다. 하나님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고 하셨는데, 이런 하나님의 언약을 자신이 변개하려고 하다고 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야곱으로 넘어갑니다. 그러나 야곱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계시하실 때 항상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름을 모세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부름을 받아 나아갈 때에 나를 보내신 분의 이름이 무어냐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라고 하자, 하나님께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3:14)라고 하시면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 내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는데 그 씨의 결국은 누구입니까? 갈라디아서 3장에 보면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3:1-16)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복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누구를 믿는 것입니까? 대신 저주 받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면 왜 이 이름 때문에 복을 받는 것입니까?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어떤 인간도 자기 이름으로 구원에 이룰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315절의 약속대로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 여인의 후손으로 오신 것입니다. 남자의 혈통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모양으로는 오셨지만 분명한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인 것입니다. 천하 인간에 이러한 이름이 없는 것입니다.

 

 

3. 그 이름 예수

물론 예수라는 이름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죄 없이 십자가를 지시고 또 자신의 죄 없이 저주를 받으신 이름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이름이 갈라디아 313절의 말씀처럼 저주를 대신 지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의 저주 받으심이란,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물로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시고, 불로서도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3장에 보면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3:11)라고 합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하시면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라고 하십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는 것은 우리가 압니다. 그런데 불로 세례를 주신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흔히 우리가 아는 불세례를 받았다고 하며 뜨겁다고 펄펄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어서 나오는 말씀을 보면 불이란 곧 심판을 말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3:12)고 합니다. 그러므로 불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현현을 말씀하실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12:49-50)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시고서도 또 받으실 세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례란 무슨 세례이겠습니까? 요한일서 5장에 보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요일5:5-9)고 합니다. 물과 성령과 피로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물세례, 성령세례를 받으시고 아직도 이루실 세례란 바로 피의 세례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십자가의 피란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불 심판을 받아 내시는 세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과 성령과 피가 하나라고 하신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성령도 이것에 대하여 증거 하시고, 하나님도 이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십자가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일하신 모습입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자기 백성을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23:3).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심판도 행하시고, 구원하시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분명하고 새로운 심판의 기준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지 않고 다른 이름이나 자신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스스로 자초하는 것입니다. 이제 사도들이 외치는 이야기, 즉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는 외침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온 세상은 다 달려들면서 예수의 이름만은 말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4:18)고 하는 것입니다. 오직 이것 한 가지만 막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세상의 심판의 기준이 우리 가운데 완연하게 드러났음을 바라보신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가 무엇을 말하며 또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는 분명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는 일 년에 두 번 세례를 받고 또 성찬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살 찢으심과 피 흘리심 안에서 살아야만 하는 자들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자기 이름을 부정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요한계시록 22장의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22:4)는 말씀이 온전히 성취된 자들인 것입니다. 예원의 모든 가족들의 이마에도 그 이름이 아름답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푼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2. 아담의 이름에는 어떤 의미의 내용들이 있다고 합니까?

3. 세례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4. 우리 인생들이 날마다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5. 축복의 이름인 그 이름에 대한 성경적인 역사와 흐름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6. 예수님이 이 땅에서 받으신 세 개의 세례는 무엇이며, 그 뜻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7.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심판의 기준은 무엇이며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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