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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본문 / 11:41-45

 

1. 하나님의 뜻

오늘 본문 45절에 보면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11:45)라고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이란 신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라는 말은 결국 나는 아직 너희의 하나님이 되지 않았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다시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려고 하신 일은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것은 그들을 거룩한 존재가 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 보면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살전4:3)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7절부터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살전4:7-8)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들을 보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거룩으로 집중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거룩하지 못하다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의 뜻인 거룩으로 향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존재하는 것에 우리의 뜻으로 두어야하는 것입니다.

 

2. 거룩하라의 의미

오늘 본문은 음식과 연관된 하나님의 정결법입니다. 정결법이라는 것은 법을 지킴으로 정결을 유지하게 되고 반대로 지키지 않으면 정결은 깨어지고 부정한 존재로 전락되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결법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부정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유대 사회에서 정결법은 그들의 삶의 행동을 이끄는 힘을 가진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정결법의 취지는 법대로 행동하면 정결하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즉 만지고 먹고 입는 문제들을 정결법의 규례를 따라 행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이 유지되는 의미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결법을 행함으로 지켜야 할 내용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정결법만이 아니라 모세의 규례 자체를 행함으로 지켜야 할 내용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그런 이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모세의 법을 무시하고 깨뜨리는 불법자로 보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정결, 즉 거룩은 구별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정결법을 주신 것은 일상적 생활을 하면서 자신들이 세상에서 구별되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조치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남겨 놓고자 하신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이러한 거룩의 첫 등장은 하나님의 창조와 연관이 있습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2:3)고 말씀합니다. 여기 말씀하신 것처럼 칠 일이라는 한 날을 하나님은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안식일 규례의 시작입니다.

그러면 육일과 칠일은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칠일은 하나님이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신 날입니다. 따라서 안식일 규례는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한다는 것은 육일의 모든 것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완전하게 되어졌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안식일에는 노동을 쉬게 하셨습니다. 인간이 일함으로 먹고 사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먹고 살아왔음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일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안식 앞에서 우리의 힘이나 행함은 내려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먹게 하시고 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우리의 노력과 일은 무의미하고 잊혀져야 할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스스로의 노력과 열심으로 살아갑니다. 자신의 힘과 노력이 밑바탕이 되었기에 세상에 보기에 성공한 사람에 대해 박수 쳐 주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백성 된 자들은 하나님의 일하심과 은혜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됩니다. 그것을 세상과는 다른 방식의 삶이기에 세상과 구별된 거룩이라고 하며 또 자기 백성을 이러한 거룩의 존재로 세우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룩은 인간의 행함이 아니라 믿음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흔히 인간의 성품과 인격 등으로 거룩을 나타낼 수 있고, 거룩한 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뛰어난 성품과 인격으로도 생산될 수 없는 것이 바로 입니다. 거룩은 곧 의롭다는 뜻인데 인간의 성품과 인격으로도 의를 생산할 수 없다면 인간이 스스로 거룩한 존재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죄의 존재일 뿐입니다. 이것은 성품이나 인격과 관계없이 모든 인간에게 동일합니다. 때문에 죄 문제에 있어서는 신자가 신자 아닌 사람보다 나은 점은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점은 있습니다. 그것은 신자는 죄의 시각에서 자신을 바라보게 되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존재임을 알게 됨으로 인해 하나님을 알지 못한 모든 인간에게서 드러나는 자기 행함과 자기의 의를 주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의 의를 주장하지 않고 하늘의 의를 바라보고 그 의로 말미암아 자신의 의의 세계에 속하게 되었음을 믿는 것이 세상과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유가 이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보다 더 낫거나 의로워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의를 증거하는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할 일은 죄인이라는 인간의 본질 안에서 자기의 의를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에 속하게 된 것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거룩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볼 수 없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 또한 우리가 보고 느끼고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하나님의 구별성을 뜻합니다. 세상과 구별되어 계시기 때문에 인간이 상상하고 기대하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닌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항상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는 인간이 상상하는 하나님은 자신을 이롭게 하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을 우리 마음에 두는 것이 희생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배척하는 것이 됩니다.

이스라엘을 향해서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스라엘 스스로의 노력으로 거룩을 이루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인도해 가시는 방향성을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거룩이라는 방향으로 인도해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에게 부여된 사명이고 존재 이유이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함께 하시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정결법을 세우시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의 의미를 바르게 알았다면 세상과 구별된 길로 가는 것을 자신들의 인생으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방 나라를 바라보면서 그들이 누리는 문명과 부에 마음이 끌렸고 결국 자신들도 그것을 누리고 싶은 욕망으로 이방의 우상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떠난 인간의 악인 것입니다.

 

3. 신자의 거룩

인간의 문제는 항상 자기 위주라는 것입니다. 자기 위주라는 것은 하나님의 안식보다 자신의 안식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즉 칠일의 의미가 사라지고 육일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육일만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피조물로 존재한다는 것을 배제하고 자신의 힘과 행함으로 자기 평안과 안식을 추구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거룩에서 벗어난 것이고 더러움으로 규정되는 세상의 속성입니다.

이러한 인간을 거룩의 길로 인도해 가신다면 그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부르신 백성을 어떤 사람으로 만드시겠다는 뜻이겠습니까? 앞에서 말씀드린 내용에서 찾아본다면 자기 위주로 존재하는 것이 죄임을 인정하고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거룩을 마음에 두는 자로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은 방향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거룩을 외적인 모습이나 행동에서 찾으려고 하지만 그것은 인간에 의해서 믿음과 상관없이 얼마든지 생산될 수 있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또한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에 의해 생산되는 거룩은 본질적 내용은 상실된 채 거룩의 흉내를 내려고 하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땅에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은 가증한즉 먹지 못할지니 곧 땅에 기어다니는 모든 기는 것 중에 배로 밀어 다니는 것이나 네 발로 걷는 것이나 여러 발을 가진 것이라 너희가 먹지 말지니 이것들은 가증함이니라”(11:41-42)고 말합니다. 사실 음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음식에 사람을 부정하게 만드는 어떤 성분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도행전 11장에 보면 베드로가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담긴 그릇을 보는 환상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잡아먹으라는 소리가 들렸을 때 베드로는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11:9)라고 거부합니다. 베드로는 정결법에 따라 먹을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베드로에게 들린 소리는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였습니다.

정결법에 등장한 짐승들은 땅과 연관이 있습니다. 땅에 밀착되어 살아가는 짐승을 먹지 말라는 것은 거룩은 세상에서 벗어나는 구별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구별의 의미를 이스라엘에게 심어 놓기 위한 것이 정결법인 것입니다.

우리는 저주받은 땅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저주받은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여 내신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자신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거룩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과 노력과 열심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의 은혜로만 되어집니다. 그래서 신자가 자랑할 것은 없습니다. 자랑이 있다면 그렇게 거룩케 하시고 거룩으로 인도하시는 주의 은혜만을 자랑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주안에서의 이런 마땅한 신자의 본분을 알아 매일의 허락된 삶속에서 주만 바라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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