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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자기 부인과 그 목적

본문 / 16:23-25

 

1. 인간의 실체

우리가 보는 성경은 옛 언약인 구약 그리고 새 언약인 신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언약이 흐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언약을 바르게 알지 못하거나 배제한 상태에서는 바른 성경 해석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성경 해석이 바르냐 바르지 않느냐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지향하는 해석인가 아니면 인간을 지향하는 해석인가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중점을 두지 않으면 그리스도가 아닌 인간을 지향하는 해석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확정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애당초 인간은 자기중심의 존재로 태어난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중심으로 태어난 인간이 세상을 자기중심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인 성경 또한 자기중심에서 이해하고 해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자기중심의 인간이 성경을 하나님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언약을 알지 못하거나 또 그 언약을 배제한 상태에서는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성경 해석을 기대할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언약은 자기중심적인 인간의 속성을 용납하지 않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언약은 언약을 세우신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대로 성취하시는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성취는 죄 용서를 말합니다. 따라서 언약에 담겨 있는 것은 하나님의 죄 용서이며 언약의 성취자로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 용서를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언약은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세계로 세상에 임했고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약의 세계는 인간의 행함이 개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에 감사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유지되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언약의 세계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은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긍휼에 소원을 두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언약을 믿는 믿음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세계에 있게 된 인간에게서만 나타나게 되는 것이 바로 자기 부인인 것입니다. 자기 부인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증거인 것입니다.

 

2. 자기 부인

오늘 본문에 보면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은 앞서 가신 예수님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보십니까? 죄 용서를 보기도 할 것이고, 자기 구원을 보기도 할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언약을 성취하심으로 누리게 된 은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죄 용서를 말할 때에도, 구원을 말할 때에도, 사랑을 말할 때에도 어느 것 하나 우리의 신앙 행위나 실천과는 무관하게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에서 시작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만을 바라본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은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가신 길에 세상이 추구하는 성공과 영광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기 전에 이것부터 분명히 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세상의 성공과 영광과는 무관합니다. 오히려 고난과 죽음이 있는 길입니다. 하지만 그 길이 생명이기에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예수님에게서 세상의 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생명만을 보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자기 부인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흔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릅시다라고 하는 실천적 의미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자기 부인이라는 실천을 요구하셨고 신자는 그 요구에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과연 인간의 실천으로 가능한 일인지 생각하셔야만 합니다.

인간이 목표로 세우고 지향하는 것은 언제나 자기 세계의 확장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시작된 본질적인 욕구인 것입니다. 본질적 욕구라는 것은 인간이 자기 의지와 각오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자기 부인이라는 실천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을 붙들고 가시는 길이 자신이 부인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길이고 따라서 제자들에게 자기 부인이 있게 하심으로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르게 하겠다는 예수님의 뜻을 나타내신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21:18-19)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가 그리스도 때문에 죽게 될 것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그리스도 때문에 죽는다 하지만 죽음은 본래적 인간이 원하지 않는 길입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업적을 이루는 것으로 자기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가 남이 띠 띠우고 원하지 않는 길’, 즉 죽음으로 끌어간다 해도 그리스도 때문에 받아들임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임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로 하여금 그 길로 가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부인은 나 스스로가 아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길에 참여하게 될 신자에게 반드시 나타나게 되는 믿음의 모습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예수님의 운명에 참여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5절에서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16:25)고 말씀하신 것처럼 살고자 하는 길에서 만나는 것은 죽음뿐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은 죽음이기에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죽음에 참여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자에게 지워진 자기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예수님 앞에서 자신은 죽은 자임을 알고 예수님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보며 예수님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닫고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부인은 내가 원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앞서 가신 예수님은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모든 것은 여러 가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이지만 그 하나에 모든 것이 포함된 것을 뜻합니다. 그 하나가 바로 생명입니다. 인간이 무엇을 해도 생명에 속했다면 모든 것을 이룬 것입니다. 낮은 위치에 있다 해도 이룬 것이고, 가난하다 해도 이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이룰 것은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3. 자기 부인의 목적

그래서 자신이 이루고 싶어 하는 자기 욕망을 품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면 예수님에게서 십자가의 죽음이 보이지 않고 피의 용서가 보이지 않고 생명이 보이지 않고 기적을 행하신 능력만 보이기 십상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의 혜택을 입고자 하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과 의미로 남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고 주어지는 결과는 잃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부인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쉽게 말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의 길에서 본인의 열심과 노력은 의미 없는 것으로 묻혀지고 나의 죽음을 알게 하시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죽음의 길인 십자가의 길조차 따르고자 하는 소원이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부인을 자신의 욕망과 자기 뜻 모두가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사람이 욕망과 자기의 뜻이 없어질 수가 없습니다. 자기 부인은 자신을 부인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기가 부인됨으로써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일하심이 드러나고 증거되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 자기 부인이 있게 하시고 예수님을 따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고 말씀합니다.

바울의 고백에서 드러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일뿐이지 바울 자신은 철저하게 감추어져 있습니다. 일부로의 겸손을 위해 입술에만 감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앞에 감히 설 수 없는 것이 자신임을 알았기 때문에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은 수고를 하였다 하면서도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 부인의 세계에는 자기의 수고로 이룬 것이 없기 때문에 상급의 차등이라는 말이 존재할 수 없고, 봉사의 여부로 믿음이 차별되는 것도 없습니다. 그것을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가 머리 되신 교회라고 일컫습니다.

믿음은 인간의 열심에 의한 봉사와 헌신으로 채워진 세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을 자기 멋대로 곡해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교회가 그처럼 잘못된 곡해된 믿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인간의 종교 단체로서의 교회일 뿐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베푸시고 남기신 것, 은혜로 인해 다스림받으며 은혜의 은혜 됨을 증거 하는 길에 있습니다. 때문에 인간의 수고에 의한 것은 단 하나도 나올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 믿음의 길을 가게 됩니다. 이것을 앞에 가신 주를 보며 확인하시고 우리의 가는 길에 하나님의 은혜와 열심만 남는 자기 부인이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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