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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교회다운 교회

본문 / 1: 4- 8

 

1. 신자의 시각

성경을 읽으며 느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사람들과 세상에 대해서 그 어떤 희망이나 기대를 가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2:23-25)고 합니다. 사람을 지으신 분이시기에 사람의 속이 어떠한지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를 아시기에 예수님은 사람에게 의탁하지도 아니하시고 또 사람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던 선지자들도 이스라엘을 향해서 그들의 죄를 책망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할 때도 '이스라엘이 이렇게 말하면 심판이 두려워서라도 뭔가 달라지겠지?'라는 기대를 가지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세상에 대해서 어떻게 일하실 것인가만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지자들이 세상을 그렇게 보고 있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도 세상을 그렇게 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의 장소로 보신다면 세상은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버림받은 장소이며,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것 자체로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 대해서 그 어떤 기대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이미 세상을 심판해 버리셨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이미 하나님의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상태입니다. 생명 나무 밖으로 쫓겨난 것이 세상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절대로 희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또 사람들의 노력과 열심을 통해서 세상이 윤리와 도덕으로 가득 채워져 살기 좋은 땅으로 변해간다고 할지라도 세상은 이미 하나님께 버림받은 땅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버림받은 땅에 기대를 걸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윤리와 도덕을 가르칩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또 교회가 많이 세워지면 뭔가 세상이 달라질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환상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지 못하는 모든 것이 하나의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지난주에 찾아보았던 이사야 선지자는 세상의 심판을 말하고 이사야서를 마치면서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하여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버린 세상에 미련과 기대를 두지 말고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 모든 기대와 희망을 걸고 살아가라는 뜻인 것입니다.

즉 망할 땅에서 살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살 것을 기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버린 세상을 우리도 함께 버리고 또 예수님이 떠난 세상을 우리도 함께 떠나는 것, 이것이 바로 세상을 사는 신자들이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은 세상을 망할 장소로 보지 않습니다. 내 꿈과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곳으로만 바라봅니다. 세상이 망한다고 해도 내가 예수님을 믿는 이상 그 망하는 곳에서 나를 구해 내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는 망할 세상에서 구출 받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으로부터의 구출은 마지막 때 가서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미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된 이 세상에서부터 세상을 떠난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떠난 자로 산다는 것이 산속으로 들어가서 기도만 하고 있으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몸을 세상에서 빼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세상을 떠난 자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되면 돈을 벌어도 돈 때문에 즐거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때문에 즐거울 것이고, 승진을 하고 출세를 해도 그것 때문에 마음이 든든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때문에 든든한 마음 되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은 절대 기대 걸만한 곳이 못 되고 세상은 이러이러한 원리로 존재하기 때문에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임을 알게 되고 그것을 바르게 깨닫고 살아가는 그들이 바로 신자이며 교회인 것입니다.

 

2. 교회의 존재 목적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1:4)라고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일곱 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가 세상의 심판 기준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에 담겨 있는 이러한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는 모여서 예배드리고 전도하고 교제하고 좋은 일도 하면서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해 버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만든 종교단체이지 결코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교회는 세상이 망할 때 함께 망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 존재하는 교회의 위상이 뭐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가장 교회다운 것이 어떤 모습이며, 교회가 어떻게 존재할 때 교회로서의 위상을 제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로 모이는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을 모른다면 우리는 모여도 교회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이 만든 종교단체로 모이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취미 생활을 위해서 모이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교회의 위상이 무엇입니까? 큰 건물입니까? 아니면 수만 수십만이라는 사람의 수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세계 각 나라에 선교사를 얼마나 많이 보내고 또 굶어 죽는 나라에 구호품을 보내고 노숙자를 위해서 천막을 설치해주고 점심을 대접하고 구제하는 것들이 교회의 위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이 세상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등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큰 예배당이 세상의 죄를 드러낼 수는 없습니다.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세상의 죄를 드러낼 수도 없습니다. 교회 밖에서도 그렇게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교회다움을 착한 일과 좋은 일을 통해서 보이고자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신 이유를 확실히 알아야만 합니다. 그 이유를 알아야 우리를 교회로 모이게 하신 이유를 알 것이고, 그래야 우리가 교회로 모여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게 되는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왜 교회를 세우셨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에 이스라엘이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세우신 이유는 이스라엘을 통해서 세상을 평가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을 세우심으로 상대적으로 세상의 죄를 드러내시겠다는 것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

따라서 세상에서의 이스라엘의 위상은 세상의 부정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이스라엘의 묵시적 의미'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세상의 부정적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은, 이스라엘은 부정적이지 않는 모습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위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세상이 볼 때 부정적인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실 때 부정적인 모습이 아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세상은 이미 어둠입니다. 어둠은 어둠을 좋아하고 빛은 싫어합니다. 따라서 어둠의 세상이 볼 때는 빛의 세상은 부정적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빛이신 하나님이 세상을 보실 때는 분명 어둠의 세상이 부정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미움받을 수밖에 없고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어둠을 드러내고, 그 어둠의 정신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밝혀내기 위해서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존재케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항상 세상을 의식하면 안됩니다. 세상에 대해서 부정적이지 않으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정적이지 않음으로 해서 세상의 부정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이스라엘의 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 역할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세상과 똑같은 정신으로 놀아버립니다. 그러면서도 이스라엘은 '우리는 특별히 선택받았다'고 하면서 잘난 체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도 세상과 똑같은 부정적인 모습만 드러내었고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도 세상과 함께 심판해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교회는 어둠을 드러내기 위해서 세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가지고 있는 묵시적인 의미입니다.

교회라는 것은 앞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가 있으니까 그때를 미리 대비하자고 모인 모임이 아닙니다. 교회를 장차 임할 심판을 대비하기 위한 곳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의 뜻은 전혀 생각지 않고 자기 구원만 생각하고 있는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인간 편에서 대비할 수도 없고 또 막아 낼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대비하고 준비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의도대로 철저히 시행될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에는 발전이라는 의미가 없습니다. 부흥이니 성장이니 이런 단어들은 눈에 보이는 역사 세계를 살아가면서 현재보다 미래가 더 나아져야 한다는 역사의식에서 나오는 생각들입니다. 그러나 묵시 세계란 앞으로 더 나아져야 한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면 더 나아져야 한다는 개념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으로 이미 완성인 것입니다. 더 나아져야 할 것도 없고 또 고쳐야 할 것도, 부족한 것도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입니다. 이것이 묵시 세계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가 부흥해야 한다, 성장해야 한다고 떠들면서 사람들을 다그치고 있는 것은 교회 스스로 교회임을 부정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따라서 '부흥하지 않으면 교회가 죽어있는 것이다'라는 말이 얼마나 교회답지 못한 이단적인 말인가를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교회가 부흥했느냐'가 아니라 '교회가 교회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존재하고 있느냐'를 물어야만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의 교회는 교회로서의 모습을 잃어버렸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말해주는 것이 바로 일곱 교회에 쓴 편지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교회에 개입하셔서 교회를 통해서 세상의 죄를 드러내고자 하신다면 교회의 교회다운 기준과 또 세상에 세워진 교회로서의 위상이 무엇인가를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과연 교회다운 교회로 모이고 있는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교회다움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1:5)라고 말합니다.

여기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충성된 증인으로 먼저 나셨다는 것은, 뒤따라서 충성된 증인으로 날 자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예수님을 따라서 예수님과 함께 죽을 자들이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그 그리스도를 머리로한 교회인 것입니다. 즉 이렇게 예수님의 고난에 함께 동참한 교회가 바로 참된 교회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고 세상의 죄를 고발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에 4절에 보면 보좌 앞에 일곱 영이 있다고 했는데, 여기서 말씀하는 일곱 영이란 바로 성령을 가리킵니다. 일곱 교회 일곱 영 모두 일곱이라는 숫자가 등장을 하는데, 일곱이란 뜻은 '하나님이 다 하셨다'는 뜻입니다.

7이란 숫자는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완성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이 다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곱 영이란 성령으로서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역을 완성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와 예수님 사이에 성령이 계시는데 그 성령이 신자를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그리스도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세계는 바로 고난의 세계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그리스도를 따라 고난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를 아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교회다운 교회이겠습니까? 오직 주만 믿으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의 흔적을 안고서 주님과 함께 그 고난의 길도 마다하지 않는 것, 이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 보다는 세상에 더 관심이 있고, 주님을 위해 고난받기를 기뻐하기보다는 세상의 성공으로 더 기뻐하기를 원하는 자가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만 관심 두기 싫어하는 자는 교회에서 나가 달라고 외치는 것이 교회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떠나신 분입니다. 그런데 신자가 세상에 눌러 앉은 채 '세상에서 잘살게 해달라'고 예수님을 붙들고 늘어진다면 그것이 과연 그리스도의 피의 흔적을 안고 사는 교회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기 때문에 천국 가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다는 것은 오늘날도 교회가 교회로서의 위상으로 존재하지 못할 때 교회로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세상과 함께 멸망한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도 열심히 한 것이 있으니까 봐주겠지'라는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열심 때문에 봐줄 생각이 있으시다면 애당초 이스라엘을 멸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하나님을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8절에 보면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1:8)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천지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존재하신다는 시간적 의미로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천지창조 때의 하나님이나 지금의 하나님이나 장차 오실 하나님의 마음이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이나 나중이나 동일한 마음으로 일하셨고 또 그 마음으로 세상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전혀 변하시지 않고 처음의 약속을 그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이란 뜻에서 '전능한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참된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1:6)이라고 말씀하는데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은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날 위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 신자 되게 하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입니다. 그런데도 나만을 생각하고 나만을 위해서 살고자 한다면 그것은 분명 신자가 아니며 교회가 아닙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교회의 위상은 세상의 부정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교회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속한 교회라는 단체를 발전시키고 부흥시키고 성장시키기 위해서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속한 교회에 관심을 둔다는 것은 우리가 속한 교회를 아끼겠다는 것이고, 우리가 속한 교회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교회를 아끼고 교회를 포기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교회의 위상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교회란 오직 하나님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교회를 위해 존재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나를 위한 교회, 교회를 위한 교회로 살아가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우리는 교회다'고 소리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과거 이스라엘의 모습과 똑같은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7절에 보면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1:7)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는 예수님을 찌른 자들도 다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옛날 로마 군병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예수님을 미워하고 거부하고 무시하고 배척했던 모든 것을 말합니다. 즉 예수님이 오심으로서 세상의 모든 죄가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장차 오실 예수님을 미리 보고 사는 것입니다. 세상의 무엇이 예수님을 죽였는지 미리 보면서 그 죄에 연합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피의 흔적을 안고 살기에 힘써야만 합니다. 세상의 힘이 예수님을 죽였는데 교회라는 우리가 세상의 그 힘을 좋아하고, 힘이 모였을 때 그 힘으로 약자를 무시한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주님을 찌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오실 그때까지 그리스도의 피의 흔적만 안고 살아갑시다. 성령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길로 인도할 때 그 길도 마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속한 교회를 아끼지 마시고, 바라보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교회로 모이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그리스도가 무엇에 의해서 죽으셨는가를 보이는 도구로 사용하고자 하실 때 기쁘게 그 길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교회다운 모습이고 교회의 위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비록 그렇게 사는 것이 세상의 시각으로는 부정적으로 보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의로운 것이고 선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교회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부정적으로 보신다면 그것은 이미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교회의 존재 목적과 그 위상을 잃어버리지 않는 그리스도를 머리로한 참된 교회로 남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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